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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00913 이 바보야, 좀 더 일찍 말하지! 조회수 : 821
  작성자 : 이종관목사 작성일 : 2020-09-12

1974년 9월 13일 저의 아버지는 별세하셨습니다. 뇌출혈로 며칠간 혼수상태에 계시던 아버지는 잠깐 의식을 회복하셨고 지켜보고 있던 저의 가족들에게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부끄럽다, 내가 잘못 살았다” 이 말씀을 남기시고 잠시 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때 저는 왜 이런 말씀을 돌아가시면서 하시는가? 한 번이라도 미리 들려주셨다면 우리 모든 가족들은 오히려 아버지를 이해하고 재롱을 부리는 자식으로 살았으리라 생각되어 많이 울었습니다.

이번에 제가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을 때 의사 선생님은 환자인 저에게 배우자와 가족 관계를 물으시고 약물 복용과 함께 가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며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자신의 공황 증세를 솔직히 말하고 도움을 구하라고 일러주셨습니다.

그래서 요사이는 아내에게 “쓰러질 것 같다. 못 견디겠다.” “당신이 이렇게 하는 말과 행동은 나에게 부담이 된다”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 등등 순간순간 상황을 알려주고 생각을 전하며 사랑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최영기 목사님이 사모님 장례 후 이런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아내가 세상 떠나기 전 호스피스 관리에 들어가자, 서울교회에서 아내와 함께 연수관 사역을 하던 자매가, 소식을 듣자마자 비행기 표를 끊어 한국 익산에서 날아와 같이 자면서 아내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밤에는 도란도란 많은 얘기를 나눈 모양입니다. 어느 날 밤 아내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최 목사를 처음 만났을 때, 가진 것도 없고 잘 생기지도 않았는데, 내가 왜 그렇게 쫓아다녔는지 몰라.” 또 다른 날 밤에는 “최 목사가 나와 결혼하도록 내가 유도했는데, 최 목사는 내가 그랬다는 것도 몰라.”

이 말이 저에게는 의외였습니다.

저는 청소년 때 외모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었습니다. 네모난 얼굴도, 넓적한 코도 싫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그때나 지금이나 누구나 인정하는 미인입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 부부를 보고 ‘미녀와 야수’라고 농담을 했는데, 저는 서슴없이 동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예쁘게 생긴 아내가, 못생긴 나와 ‘결혼해 주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은퇴한 후 1년에 절반을 한국에 나가 있으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던 것도, 아내 곁을 떠나 있는 것이 짐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내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즉시 비행기 표를 끊어 휴스턴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 입에 딱 맞게 계란 프라이를 해서 아침 식사도 만들어주고, 휠체어에 태워 변기에 앉혀주고, 끝나면 일으켜서 침대로 데려오고, 최선을 다해 돌보아 주었습니다. 이때부터 감정 표현을 쑥스러워 하던 아내가 비로소 생각과 느낌을 솔직하게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나 때문에 너무 고생해서 미안해.” “고마워.” “지난 49년 동안 행복했어.”

아내가 좀 더 일찍 이런 말을 해주었으면, 자신감을 갖고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더 잘해주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천국 가서 아내를 만나면 다짜고짜 야단부터 치려고 합니다. “이 바보야, 좀 더 일찍 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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