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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간증 나눔> 고등부 박진형 형제 | 조회수 : 1315 |
작성자 : 손영호목사 | 작성일 : 2009-07-03 |
지난 주일에 박진형 형제가 은혜로운 간증을 나눴습니다. 모든 성도들에게도 큰 은혜가 될 것 같아 올립니다.감사합니다.
우선 좋은 기회를 주시고 이 자리에 서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형제자매 여러분. 울산시민교회 고등부의 박진형 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저의 삶을 변화시켜주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작은 경험을 하나 소개해보고자 함입니다. 가볍게 경청해주세요.
아주 어릴 때 주님께서는 제게 신앙의 씨앗을 뿌려두셨습니다. 철저한 불교집안에다가 죄악으로 넘쳐나던 저희 집안에서 집안 유일의 크리스천이신 어머니를 통해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신이시라는 것과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이라도 알게 해주신 주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 덕에 저는 어두운 집안과 세상 속에서도 방황한 후엔 이곳으로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저희집안 중에서도 저희 아버지께선 그나마 제일 열린 분이십니다만 교회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란 사실은 다른 가족과 다르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교회에 다니는 것에 대해서도 못마땅해 하셨고 저와 제 동생은 교회에 발도 못 붙이게 하셨습니다. 명분은 우리형제가 판단력이 생겨서 자신이 생각했을 때 가장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는 종교에 함부러 발을 들이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것이었지만 사실 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담아 다시표현하자면 교회에는 웬만하면 가지 않았으면 좋겠으니 내가 통제할 수 있을 때까진 못 가게하고 그 후에도 가겠다하면 내가 막을 방법은 없다 정도가 될 것입니다. 아쉽게도 그때의 저는 힘도 없었고 아버지말씀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구나하고 수긍해버렸고 성인이 되기까지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주님께서 뿌려주신 신앙의 씨앗을 소중히 간직한 채 그렇게 몇 년이 흘렀습니다.
크면 교회로 가봐야지 하는 마음만큼은 없어지지 않았지만 세상사람 으로써 세상에 맞춰 자라게 된 저는 점점 주님을 잊어갔습니다. 지금이야 돌이켜보면 저의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지만 당시의 저는 삶에서 한 번도 어떠한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지요. 점점 주님을 잊어가고 저는 속물이 되어갔습니다. 남을 속이고 까고 밟고 올라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돈이야말로 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생각했습니다. 철저한 개인주의로 남에게 피해만 안주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이렇게 살면서도 오히려 풍족했고 세상적으로 별로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자칫하면 완전히 하나님을 잊을 뻔했던 교만한 저를 주님은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선 제가 주님을 찾을 수 있도록 제게 부족함을 주셨습니다. 그 부족함은 세상적인 육체나 지식 혹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혼의 부족함이었습니다.
수개월을 헤매었습니다. 이 공허함이 영적인 부분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뭔지 모를 이 공허감은 저를 오랫동안 괴롭혔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픈데 아무리 먹어도 배고픔이 해소되지 않는 것 같은 느낌 그러나 허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 고통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온갖 방법들을 다 써봤습니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도 해보고 공부도 열심히 해보고 운동도 해보고 술도 마셔보고 집만 비면 야동을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채우려하면 할수록 공허감은 커져만 갔습니다. 가면 갈수록 공허감을 채우려는 저의 노력은 죄가 되어갔고 정신은 황폐해져갔습니다.
이렇게 죄 속에 살던 제게 주님은 빛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선 학원선생님을 통해 저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고통스러워하던 저를 알아보시고 하루는 선생님께서 잠깐 조용한곳으로 부르시더니 요즘 뭔가 힘든 일이 있지 않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솔직한 저의 상태를 설명했고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영혼의 빈 공간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설명을 듣는 동안 바로 이거구나 싶었습니다. 이때까지 어느 누구도 제 상태에 대해 시원하게 얘기해준 사람이 없었는데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으니 이제 와서야 저의 문제를 알게 된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제시해준 해결책은 바로 교회를 가보자는 것이었고 선생님께선 교회에 나가기 힘든 저의 집안사정을 아시고는 일요일아침에 보충수업시간을 잡아주시고 그 시간에 교회에 데리고가주셨습니다.
처음 교회에 가던 그날 아버지를 속이고 집을 나오던 저는 드디어 내가 교회에 가보는 구나하는 기쁨과 설렘이 있던 반면에 살짝 두렵기도 했습니다. 수년 동안 종교의 자유를 제한 당했던 저에게 교회를 가기로 결정하던 것은 나름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곧 교회에 들어서니 그런 불안함은 다 사라지고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조용한 음악이 기도와 함께 흐르는 그곳 어렸을 때부터 줄곧 오고 싶어 했고 절 그곳까지 이끌어주신 하나님께서 계시는 그곳에서 저는 마음속 깊이 평안함을 느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수개월간 저를 괴롭히던 영혼의 빈공간이 평안함으로 가득 차 흘러넘치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다니며 영접을 했고 예수님을 저의 구주 저의 하나님으로 제대로 믿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주님께서 심어주신 신앙의 씨앗이 이제서야 싹을 틔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제서야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줄 알았던 저의 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저는 참 충실한 사탄의 노예였습니다. 다행이도 곧 주님께선 저의 새 주인이 되어주시고 저를 변화시켜주셨습니다. 제인생의 원동력을 질투와 복수심에서 사랑과 희망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제인생의 새 목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입에 붙어 다니던 욕들이 감사의 말로 변화되었고 작은 생활습관부터 조금씩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다니며 지식과 믿음을 쌓아갔고 그동안 주님께서는 이제까지의 제 인생에서의 가장 큰 변화를 준비하셨습니다.
제 인생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새 교회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젠 고등부로 옮겨야겠다는 것을 느낀 저는 이지윤 자매님의 도움으로 이곳 울산시민교회의 고등부에 발길이 닿게 되었습니다. 어른예배와 사뭇 다른 분위기의 열 띈 찬양과 청년들의 열정이 느껴지는 이곳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드디어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고 선생님과 셀 원들과의 나눔으로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고 그분들의 깊은 믿음을 보고 배우며 서서히 적응하던 무렵 새해가 시작되고 새 셀이 편성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곧 수련회가 다가왔습니다. 정말 수련회에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삼일씩이나 아버지를 속이고 다녀올 변명거리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께 기도하며 기회를 노렸지만 아버지는 쉽게 무너지지 않으셨습니다. 친구 교회에서 수련회를 가는데 봉사활동시간도 많이 주고 정말 재밌다더라는식으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더니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증거는 없지만 요즘 니가 좀 이상하다는걸 알고 있다고 너는 성인이 될때까지 결코 종교에 관련된 활동을 할 수 없다고 꿈 깨라는식으로 말씀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버지의 속박이 너무 싫었습니다. 내가 주님을 믿고 주님께서 날 사랑하시는데 성인이 되는 게 무슨 필요가 있고 아버지께서 나를 막을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지..입으로는 판단력이 부족할 때 한 특정종교에 영향을 받으면 스스로 올바른 종교를 가질 수 없다지만 오히려 아버지야말로 내게 아버지의 사상을 강요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에 화가 났습니다. 그런 저의 억울함을 아시고 주님께선 제 입을 용기를 주시고 제 입을 여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한 목소리로 아버지께 단호히 선언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엄청나게 깨졌습니다만 마지막에 아버지의 살짝 힘 빠진 목소리에 저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마지막순간 아버지께서는 니마음대로 해라고 하시고는 문을 꽝 닫고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수련회를 가서 원하던 대로 정말 좋은 경험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집으로 돌아온 저는 마음 단단히 먹고 한층 더 완강해지신 아버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그다음 주 주일은 교회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선 그 어느 때보다 더 완강히 저를 막아볼 생각이셨던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 안에 역사하고 있는 사탄의 마지막 발악을 느끼고 이젠 담판을 지을 때라 믿고 선생님과 셀 원들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날 태어나서 가장 열심히 기도했던듯합니다. 저 뿐 아니라 많은 분들께서 함께 기도해주셨습니다. 그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특히 아버지마음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기도가 있었던 그 밤이 지나고 바로 다음날 아침에 그렇게도 교회를 싫어하시고 완강히 저를 십 칠년 동안 줄곧 막아서시던 아버지께서 단 하룻밤 기도에 마음을 여셨습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제 삶의 가장 큰 변화이고 주님께서 제 삶에 가장 크게 역사해주신 순간이었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아십니까. 일요일 되면 아버지께서 제일먼저 일어나셔서 교회안가냐면서 깨워주십니다. 동생도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어머니께서도 눈치 보시지 않고 떳떳하게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아버지께서 교회에 나오시진 않으시지만 곧 가족이 다함께 하나님 앞으로 나올 날이 곧 오게 될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변화시켜주십니다.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로 간구하면 하나님께선 우리기도를 반드시 듣고 이루어주십니다. 결코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들어주십니다. 언제나 함께해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미숙하고 부족한 간증이나마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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