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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20717 내 안의 우상을 몰아내라! (사사기 18:20-31) 조회수 : 363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22-07-19

20220717 내 안의 우상을 몰아내라! (사사기 18:20-31)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다. 그들은 지파별로 분배받은 땅을 정복해야만 했다. 단 지파는 분배받은 땅을 포기하고, 다른 땅을 찾아보기로 했다. 북쪽으로 파견된 정탐꾼은 미가의 집에서 제사장 노릇을 하는 레위 소년을 만난 후, 라이스 지역을 정탐했다. 거주민들은 유순하고, 외부와 교류없이 고립된 사람들이어서 정복하기도 쉬워보였다. 단 지파는 6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라이스 정복 길에 나섰다. 북쪽으로 진군해 가던 도중, 의도적으로 미가의 집을 찾아갔다. 미가의 집에서 보았던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약탈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단 지파는 미가의 가정 제사장이었던 레위 소년을 단 지파의 제사장으로 영입한다. 단 지파의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를 통해 자기 욕망을 섬기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버젓이 우상을 끼워서 섬기는 자들이 이스라엘이었고, 특히 단 지파였다. 
우상이란 “그것이 없으면 내 삶이 무의미해진다고 믿는 것”, “그것을 가지면 내가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고 믿는 것”, “그것을 가지면 안정감을 느낄 거라 믿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상이 가진 악하고 허망한 특징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 우상의 악하고 허망한 특징이 무엇입니까?
첫째, 우상은 나에게 복을 주지 못합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우상이 자기 아들과 자기 가정에 복을 가져다줄 거라 믿으며 우상을 만들었고, 미가는 레위 청년을 제사장으로 삼아 복을 얻을 것을 기대했다(삿 17:3, 13). 그런데 자기에게 복을 준다고 믿은 그 신상은 물론 다른 신상들과 에봇과 드라빔을 단 지파에게 빼앗겼고, 가문의 제사장까지 빼앗겨버렸다. 미가는 이웃들을 무장시키고 함께 단 지파를 쫓아가서, 빼앗긴 신상들과 제사장을 되찾으려 했다. 하지만 단 지파는 신상들과 제사장을 돌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미가는 하나님을 섬기는 대제사장이 입었던 에봇을 사사로이 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여러 신상들까지 만들어 가정의 신전에 두었다. 그러고는 그 우상들과 기물들이 자기를 지켜주고 자기에게 복을 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큰 착각이었다. 24절에서 미가는 “내가 만든 신들과”(삿 18:24)라는 말을 했다. 미가는 자기도 모르게 우상의 실체를 폭로한 거다. 우상은 사람의 욕망을 위해 사람이 만든 존재일 뿐이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자기가 만든 존재에게 예배하고, 기도하고, 의지하는 것이다. 실재하지도 않는 우상인데, 능력을 가진 존재도 아닌데, 의지하고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다른 존재가 아닌 ‘하나님’을 섬김으로써 사람의 한계와 연약함을 극복하길 원하셨다. 그런데 사람이 그의 죄성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길 싫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섬기려 한다. 우리는 우상의 허망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인자하심을 확신하고 그분만을 섬겨야 하는 것이다. 우상들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된 복의 근원이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참되고 복과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좋으신 아버지심을 확신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둘째, 우상은 나와 타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합니다.
“단 자손이 그에게 이르되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하지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하고”(25). 우상을 탈취한 단지파는 자기들이 도둑질을 해놓고, 오히려 화를 내며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적반하장의 모습이다. 참으로 이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남을 짓밟고 파괴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우상숭배자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얼마든지 남을 희생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호와 신앙은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섬길 것을 가르친다(나오미와 룻). 하지만 우상을 흠모하여 쫓아가는 자는 타인을 파괴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파괴한다(입다, 야곱). 우상을 쫓는 삶은 당장은 나에게 유익을 줄 것 같고, 당장은 어려운 상황을 해소해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 나를 파괴하고 주변 사람까지도 파괴해버리는 것이다. 추구하는 우상을 성취하고 소유하게 되더라도, 그것이 내게 복을 주는 게 아니라, 공허함과 목마름을 더 가중시키는 것이다. 당장 우상이 내게 행복을 줄 것 같더라도, 우상을 탐내거나 취하지 마시기 바란다! 오직 하나님만이 내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는 ‘생명수’가 되심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우상의 우물이 아니라 여호와의 우물에서만 물을 길어 마시시길 바란다. 

셋째, 우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잊게 만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행복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시다. 그리스도인인 저와 여러분은 이것을 머리로는 다 알고 있다. 우상을 따라갈 때 가장 큰 위험은 우리가 하나님을 잊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삿 18:31).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었다. 실로는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과 영광을 두시고 이스라엘을 만나시는 장소였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실로를 쳐다보지 않고 우상만 쳐다보며 살았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우상이 주는 매력에 빠져버렸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은 마음에서 멀어졌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마치 이력서 종교난에는 ‘기독교’라고 쓰지만, 실제로 그의 종교는 ‘자기교’인 사람과 같았다. 
또한 충격적인 사실은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던 미가의 제사장, 아니 이제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된 레위소년이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삿 18:30)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스라엘을 바른 신앙으로 이끌어야 할 의무를 가진 자가, 오히려 이스라엘을 헛된 우상숭배로 이끄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더 비극적인 사실은, 단 자손의 우상숭배가 한 지파의 죄악으로 끝나지 않았고, 전염병처럼 열두 지파 전체로 퍼져나갔다는 사실이다. 주전 722년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포로로 잡혀가는 날까지, 단은 금송아지 우상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 반역과 패륜의 본거지가 되었다. 
우리 마음의 왕좌는 하나뿐이다. 그래서 우상이 왕좌를 차지하면 하나님은 밀려나게 된다. ‘헛된’ 신을 쫓아내는 확실한 방법은 ‘바른’ 신을 모셔들이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내 마음의 왕좌에 온전히 모시고 그분께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 바란다! 그럴 때 우상이 내 마음의 왕좌에서, 내 삶의 중심에서 추방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결론
사람의 마음은 우상 공장이다. 우상을 쫓는 가장 확실한 것은 하나님을 왕좌에 온전히 모시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거짓 행복을 약속하는 우상을 떨쳐버리고, 여러분을 위해 사랑과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기 바란다! 하나님만을 사랑할 때 우리가 생명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우리가 행복해지길 원하신다.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께만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행복과 나의 행복을 함께 성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가짜 행복을 약속하는 내 안에 숨은 우상들을 몰아내고, 진정한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날마다 평안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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