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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나는 휴가를 떠나려 합니다. | 조회수 : 952 |
작성자 : 노덕영 | 작성일 : 2012-08-25 |
2012년 8월 24일 오전 9시 박사 학위 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앞이 보이지 않는 폭우가 쏟아진다.
비를 가르며 목이 차게 비를 뿌리치는 윈도우 브러쉬가 그동안 이 길을 쉼없이 앞만 주시하며 숨막히게 질주한 내 모습같다.
짧은 순간 파노라마처럼 지난 10년이 윈도우 브러쉬에 튕겨나는 비처럼 지나간다.
석사논문에 이어 박사논문을 쓰며 그 동안 논문에 대한 압박감은 올가미에 걸려 파닥거리는 물고기처럼.....
논문만 끝내고 나면 쉬리라, 논문만 끝내고 나면 마음껏 쉬리라!
오로지 그 순간만을 생각하며 터지는 머리를 푹푹 심장 속으로 눌러 넣고 뜨거운 호흡을 했다.
다시 뒤돌아 보기 싫은 최종 논문 심사를 끝내고 중앙 도서관에 논문을 올리고 난 뒤 그로부터 한 달 동안 슬프게도, 난 내가 아닌 나를 붙잡고 시간과 뒤엉켜 서로 죽이고 있었다.
논문을 쓰지 않아도 되는 그렇게 기다리던 여유의 첫날이 나를 기쁘게 노크하며 찾아 왔는데 나는 빗장을 열지 못했다. 아니 열 줄을 몰랐다.
나에게 최고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하루.
나는 그 하루를 시간의 흐름이 주는 초조 속에서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 이틀, 그 사흘......................................그 보름이 지난 아침!
책상 밑에 수북하게 쌓인 논문의 잔재들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면지로도 쓰기 싫었던 연습지들을 부여잡고 책상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나도 모르게 뚝! 뚝! 떨어지는 눈물을 양 손바닥으로 쓸어냈다.
난! 이제 무엇을 하지?
난!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이제 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어떻게 난 하루의 여유도 보내지 못하고 이렇게 뻥뚤린 하수구처럼 여유의 주변을 서성대고 있을까?
이런 내 모습은 충격의 돌덩이에 강타를 당했다. 순간 나는 분리되었고 저 멀리 허전함을 부둥켜안고 있는 나를 저 만치에서 내가 쳐다보고 있다.
존재의 상실감.
난 그동안 공부를 하면서 그것을 통해서 내 존재감만 확인하고 있었다.
준비하지 않은 휴식이 이렇게 낯설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체.....
주여!
주님!
주님이시여!
기도 손을 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목구멍에서 탄식처럼 빗장이 열렸다.
따뜻함이 온 세포 세포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두 손 바닥이 마주하면 이렇게 따뜻한 것을 왜 나는 양손을 내동댕이치고 분리시켜 서로를 떨게 했을까?
어느 순간 난 끝없이 중얼거리며 쉼없이 기도한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도 눈을 감고 있는 시간도. 주여! 당신께서 계획한 제 인생에 있어서 박사학위가 필요하셨다면 이제 예정된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요?
주님! 전 이제 남은 날들을 마음이 시리지 않는 휴가를 떠나고 싶습니다.
휴가에서 돌아왔을 때 피로에 누적되지 않고 후유증이 없는 그런 휴가를 떠나고 싶습니다.
주여! 당신께서 허락 하신다면!
저에게 몇 가지 휴가 장비를 허락 하신다면!
켄버스와 연필, 붓, 그리고 물감을 챙겨서 휴가를 떠나고 싶습니다.
주여!
당신께서 허락하신다면....
그 휴가기간 이제 남은 제 평생의 시간을 그림을 그릴까 합니다. 풀 한포기 작은 생명체 하나, 스치는 바람과 자유로운 구름 한 조각,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아니 당신의 숨소리 까지 삶의 휴가 기간에 그려 볼까 합니다. 방안 가득 그려 볼까 합니다. 당신이 허락한 저의 시간 끝까지 가능하면 많은 방들을 가득 가득 그림으로 채우려 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생명들을 많은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제 손주들에게 기도하며 응답으로 그림을 그렸던 할머니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이것이 혹!
당신의 생각이라면 이제 그만 서성거리고 여유와 친해볼까 합니다. 또한 휴가를 떠나기 위한 친절한 준비를 하면 어떨런지요. 붓도 챙겨보고 연필도 깎아놓고 물감도 가득 짜서 말려볼까 합니다. 이것이 당신의 계획이라면...................................
윈도우 브러쉬가 뻑! 뻑! 소리를 냅니다.
비가 그치려나 봅니다.
혹! 당신의 응답인가요?
2012년 8월에 삶의 휴가를 요청하며 노덕영 올림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진심으로 기도해주신 이종관 목사님, 김현수 목사님, 서미경 전도사님, 진성덕 장로님과 그 목장 식구들, 정석환 목장과 김명제 목장 식구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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