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박종남 목자, 하유주 목녀를 소개합니다. | 조회수 : 2677 |
작성자 : 손영호목사 | 작성일 : 2012-07-12 |
안녕하십니까. 저는 조어식 장로님, 오승환 집사님 목장을 거쳐 조형준 집사님 목장에서 분가한 박종남이라고 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께 저의 살아온 이야기를 부끄럽지만 진솔하게 고백하려 합니다.
제 나이 서른 중반, 무엇인가에 쫓기듯이 앞으로만 달려왔던 삶을 돌이켜 보건데, 언제나 어떤 목표를 향하여 무작정 달려가고,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는 마음이 텅빈 채로 허무함을 안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텅 빈 제 마음에 무언가를 채우지 못해 안달하는 삶은 늘 걱정과 고민이 앞서고, 그 고민이 사라졌을 때는 안도감과 더불어 또 다른 고민에 걱정해야만 했습니다. 유치원부터 박사후 과정까지// 삶을 살아갈수록, 저의 삶은 채워지지 않는 이상에 대한 목마름과 갈망, 그리고 만족치 못한 일상 생활들에 대한 불평과 후회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시간은 더 빨리 흘러가는 것 같고 어떻게 사는 것인 참된것인지, 참인생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어느날 문득, 하루하루의 삶을 겨우 지탱해가는 저를 발견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시절 천주교 계열의 학교를 다닌 인연으로 영세를 받고 성당을 열심히 다녔습니다. 성당을 다니길 10여년 신부님의 강론도 좋고 마음이 따듯해지기는 했지만, 어느덧 제 삶의 의미나 변화 없이 습관적으로 시계추처럼 성당을 다니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일에 휩쓸려 가며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되고 점점 냉담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신부님의 좋은 말씀도 내 삶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입시에 휘둘려 살았습니다. 저는 사춘기가 상당히 늦게 와서 이 시절에 내가 누구 인지, 왜 태어났는지, 우주는 누가 창조했는지, 이런 문제들로 고민하고 밤잠을 설치곤 했습니다.
대학에 와서는 이런 고민들을 해결 하기 위하여 주위 분들의 조언과 충고도 많이 듣고, 세상 살아가는데 지침이 된다는 베스트 셀러류의 자기 계발서나 성공철학서도 읽어 보았습니다. 학회에 가입하여 철학서적을 탐독하기도 하였습니다. 연애가 안 될 때는 남녀간의 차이를 설명하는 ‘연애의 기술’ 서적을 읽고, 대인 관계가 잘 안 풀리고 꼬여만 갈 때는 제 성격에 무슨 문제가 있나 고민하면서 심리학 서적을 읽어보았습니다. 결국에는 대학생활문화원의 문을 두들겨 보기도 하였습니다. 대인관계능력프로그램을 이수하였는데 많은 것을 배우고, 저 자신에 대해 알아나가고, 바꾸어 가려고 실천해 보기도 하였지만 삶은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마음이 너무 여려서 남의 부탁을 잘 거절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에 사기도 여러 번 당했습니다. 친구에게 사기 당하고, 첫사랑에게 실연당한 어느 따듯한 4월의 봄날 저는 한강다리에 가서 죽는 사람은 어떤 심정일까 하고 학교에서 한강 대교까지 걸어가 보았습니다. 그 때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저에게 정말로 절실히 다가왔습니다. 정말 절박하고 슬펐습니다. 한강대교는 자살을 방지하고 기어올라 가지 못하게 하려고 난간 위에 기름칠이 되어있었습니다. 혹시 한강대교를 걸어서 건너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 우중충한 기름막 난간 위에 차 타고 지나가면 결코 알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소망들이 담겨있습니다. 노량진에 있는 많은 학원생들이 써놓은 것 같은 00 대학에 들어가겠다는 소망들, 고시에 합격하겠다는 소망, 누구와 사랑을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소망 등등 다리는 그 자체로 많은 사람들의 소망이었고 세상 사람들도 다 저와 똑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많은 눈물 속에서 삶의 희망을 찾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자기자신을 버리고 마음도 비우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만 무언가를 구해가고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점점 더 공허해지고, 마음을 비우려는 노력은 인생에 대한 더 큰 허무함을 가져올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생겼습니다. 비워야지만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채워야지만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맘에 따듯함과 열정으로 채워준 것은 세상 사람들의 위로도, 영원을 약속하는 연인간의 따듯한 사랑도 아니었습니다. 당장 벼락치기로 시험을 잘 보아서 얻은 A+의 학업 성적도, 좋은 연구 성과를 내어서 언론의 조명을 받고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오래가야 한달 정도 가는 덧없는 기쁨이었습니다.
2002년 초 어느날 선배님 한 분이 선물해주신 성경책이 어느 순간 저를 정말 사랑하는 분이 저를 애타게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 선배님께서는 성경 앞페이지에 “종남이의 인생고백이 시편 23편과 같게 되길 바라면서...”라고 쓰셔서 선물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거의 방치해놓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시편 23편이 궁금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그 구절을 읽는 것만으로도 제 맘에 포근한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저는 정말 지쳐있었고 쉬고 싶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과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끊임없이 제게 다가와서 저를 불러주셨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살던 시절 지적, 영적 스승인신 지도교수님과의 인연을 통하여 다시 한번 저를 불러주셨습니다. 저희 선생님께서는 제게 교회에 나갈 것을 권유하셨으나 저는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열심히 도망 다녔습니다. 참 말도 안 듣고, 게으름 피우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믿음의 삶을 살면서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반신반의의 맘으로, 2004년부터 서울대학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2004년은 하나님께서 저희 선생님과 저를 통하여 당신의 선한 도구로 쓰일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네이쳐 머터리얼즈라는 세계적인 저널에 논문이 실리게 되었고, 그 일로 인하여 국내외적으로 많은 언론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졸업은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제가 무사히 졸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극복해 나가시는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 저는 우리를 위하여 언제나 큰 기쁨을 주시는 선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시점에 저는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기로 결단하였습니다. 복잡하게 내 자신의 머리를 굴리려고 하지 않고 믿고 따르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저지르는 죄악으로부터 자유로워 지길 바라고 맘을 비우고자 했으나 그런 일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정말로 큰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 곁으로 가길 기도 드렸을 때, 얼마나 아늑하고 따듯한 하나님의 손길이 제 몸 깊은 곳에서 느껴졌는지 이루어 다 말하기 힘듭니다. 저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품에 안기길 원하여 2004년 추수감사절 주일에 서울대학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불러 주셨을 때, 저는 제 짧은 인생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마음 속이 꽉 차있는 뿌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추수감사절에 세례를 받았으나, 저는 제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스스로 놀라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께서는 대학교회에서 알파코스라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가 누구인지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제 삶은 인자하시고 사랑이신 하나님과의 교제로 세상에 찌들어 있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영성 캠프를 통하여 제가 아무리 죄를 짓고 하나님을 저버리는 행동을 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무릎 꿇었을 때 용서해주시는 관용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저를 불러주셨고, 저는 회개의 눈물로 하나님 앞에 나갔습니다.
또한 2005년 여름 경북대로의 전도 여행은 제 인생에 있어서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알파코스에서 저희를 지도해 주신 교수님의 권유로 아무 생각도 없고, 준비도 안된 저는 그저 따르기로 결단하고, 경북대로 전도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할 일도 많은데 어떡하지 하면서 걱정도 많이 하였습니다. 예전의 저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저를 미쳤다고 할 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경북대에는 더운 날씨처럼 찌들어 있고 하나님을 모르는 상처받은 영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경북대 전도에서 하나님께서는 꺼려하고, 자신 없어하는 저에게 놀랍게도 철저히 저 자신을 깨뜨려 주시고 한사람 한사람을 귀히 여기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방황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열도록 하는데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저는 한없는 기쁨의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도 여행 후에 또 다른 변화는 제 평생의 반려자를 하나님께서 만날 수 있게 해 주신 것 입니다. 제가 연애에는 쥐약이라 서른 이라는 나이에 우물에 풍덩 빠지는 사랑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랑비에 옷 젖는 사랑을 하기에도 시간이 없어서 빠른 시일에 결혼 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구와 결혼해야 하냐’ 하는 문제로 잠 못 이룬 밤이 부쩍 많았습니다. 정말 잠이 안 오더라구요. 그러나 7월이 끝나갈 무렵 저는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셨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녀를 ‘축복의 통로’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연인 것처럼 보이는 여러 일들을 통하여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8월 초에 우연히 그녀와 저를 동시에 미국의 같은 지역으로 보내주시어 인텐스한 만남을 가지고, 프로포즈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불과 보름 정도 되는 짧은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마치 계획하신 것처럼 반려자와 결혼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며, 언제나 많은 축복들을 주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십니다. 돌이켜 보건데 어떤 일이든지 순종함으로 결단하였을 때 늘 감사함으로 끝났던 것 같습니다.
영적 성장도 모자라고 믿음도 부족한 저를 이곳 울산시민교회로 이끄시고목자로서 섦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언제나 당신의 도구로 쓰일 수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전체댓글 0
이전글 : 힘이 빠지면 다시 힘을 내죠..뭐.. ^^ | |
다음글 : 사랑초원이예요~~~ | |
이전글 다음글 프린트하기 | 목록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