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전에 우울증에 대한 나눔을 시작 할 때만 하더라도 자살율이 OECD 2위 였는 데, 그 몇 달 사이에 지금은 세계 1위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우울증 환자가 늘었고,우울증 환자의 자살이 늘었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를 넘어 스마트폰 시대의 사회 환경과 스트레스에 취약한 현대인의
특성으로 청년 자살율도 갈수록 많아 질것이라고 예측을 했었는 데,
첫 휴가를 나온 육군 장병이 귀대 날 전철로 뛰어 들어 자살하고
,
첫 휴가 나온 전경이 귀대 날 투신하여 자살합니다.
추측컨대, 평소 부모와의 대화가 부족했거나, 대화를 해도
"너무 힘들어요" 얘기 했을 때, 부모는 "내 때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게 힘들었는 데 지금 군대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그 고통의 언어를 묵살 했거나
아니면 "다른 아이들도 다 잘견디는 데 나약하게 왜그래"하며
각자 뇌가 견딜 수 있는 한계의 개인의 특성이 다른 데,
주위 사람이나 가족들에게 그 청년들의 고통이 무시 당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카이스트 학생들이 다섯 명 째 투신 자살합니다.
경찰은 마지막 투신 학생의 개인 트위트에 적혀 있는 "죽고 싶다"는 글을 보고 유서라고 엉터리 발표를 하면서 자살로 서둘러 종결합니다.
일전에 얘기 했듯이 "우울증 환자는 끝 까지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유서를 적지 않는다"하고 글을 적었었는데,
그 트위트의 글은 자신의 고통을 친구나 가족에게 얘기 해봤자 이해 봤기는 커녕
"나약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 뻔했기에
혹여 누군가 나의 트위트를 보고 "나의 고통의 심각성을 알고 나를 좀 도와 줬음"
하는 애절한 마지막 신호를 보내는 글인 데, 경찰은 우울증에 대해 무지하여
그 것을 유서라고 방송에 발표 합니다.
이 안타까운 젊은이들의 죽음을 보면서.
모든 운동을 다 잘하는 사람은 없듯이,
사람들이 각자 잘하고 좋아 하는 신체적 운동이 틀린 것과 같이
특정 환경이나 상태에서 견디는 뇌의 상태가 다르다는 것을 사람들이 아직 인식을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고,
또한 부모와의 대화,의사 소통만이라고 되었다면, 이런 젊은이들의 불행을 막을 수가 있었는 데,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그네들이 원하는 사랑의 언어를 안 쓰고,
일방적인 자식들이 이해되지 않는 부모의 언어를 쓰고,
빵만 줄려고 했지, 자식들이 원하는 방식의 사랑을 줄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원하는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고 원활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가정에서 자란 젊은이는 자살 확률이 훨씬 떨어 질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질 못해 앞으로도 젊은이들의 자살율은 계속 높아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심리적 치료의 진정한 상담자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부모 그리고 가족이 진정한 상담자가 되어야하고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안되는 환경이라면, 우리들교회의 나눔의 장인 목장에서 다른 목원들의 따뜻한 배려의 마음과 객관적 시각의 조언과 성경적 해석이 우울증 환자의 심리적 치료의 아주 훌륭한 치료의 장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미 뇌에서 고착화된 만성중증 우울증 환자보다 초기 우울증이나 경한 우울증이 몇 년 씩 지속이 되는 환자에게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병원의 심리적치료 보다는 목장나눔과 QT와 말씀을 통한 성경적 접근으로 자기 삶을 해석하는 것으로 우울증의 원인요소를 인지 가능하고 그 밖의 심리적 해석 및 치료에 도움이 될것입니다.
I.인지 행동 요법
인지란 생각을 말하는 것인데, 우울증 환자의 왜곡된 생각의 전환을 유도 하는 치료입니다.
외부에서 보다 내부에서 문제를 찾고 자기 비관적인 성향을 개선하는 치료입니다.
환자들이 가장 많이 격고 있는 사고는 인지적인 오류입니다.
즉 똑같은 상환에서 정상인은 정상적인 판단으로 생각을 매듭짓거나,흘려버리나.
우울증 환자는 특별한 근거가 없는 데도,부정적인 추측과 결론을 내고 계속 그 상황을 떠 올리면서 고통 받고 분노하여 아픈 뇌를 더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길을 가다가 어떤이가 그 환자를 휠껏 쳐다보고 지나 갔을 때,
부정적 생각으로 가득 찬 우울증 환자는 "자기를 째려 보면서 경멸하고 갔다"고 추측하고 밤새 잠을 못이루고 그 때 "왜 째려 보느냐"고 따지지 못한 것에
자신을 자책하고 그 사람에 대한 분노가 가시처럼 계속 뇌에서 떠오르면서
그 상황이 가시 처럼 아픈뇌를 찌르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 때, 가족이나 다른 목원들이
"그 사람이 당신을 경멸하는 눈으로 본것이 아니라,당신 뒤의 다른 사람이나 물체를 봤거나,당신을 아는 사람으로 착각해서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얘기하면서 긍정적 방향으로 유도 하면 환자의 뇌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받아들이면서 그 상황에 대한 자책감과 분노에서 뇌를 편하게 해주는 요법입니다.
부정적 시각을 긍정적 시각으로 바꾸는 뇌의 트레이닝을 시켜 뇌를 편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일전에 목사님이 "사소한 일도 목장에서 소중한 나눔의 재료가 될 수 있는 데.
그런 일을 왜 나눔을 하지 않느냐"고 한 목자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울증 환자는 목장에서 사소한 불쾌감이나 뇌를 아프게 하는 고민을 목장에서
open하는 것이 좋고,
그 나눔을 들은 목원들은 우울증 환자의 고통이 뭔지는 모르지만
환자라는 것을 인지하고 정상인의 입장에서 "쓸데 없는 말로 쉽게 넘어가지말고"
"그 상황에 대해 다른식으로 나도 그런 경험이 있는 데 나는 그 때 이렇게 해석하고 넘어 갔다 또는 성경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말로
성의껏 말만 해줘도 그 상황 때문에 뇌의 회로가 뒤죽박죽 엉켜 있는 뇌세포가 정돈이 되어 날카롭고 흥분이 되어 있는 뇌를 안정 시켜 줄 수도 있습니다.
환자가 아내와 남편 그리고 부모에게 정상인들이 보기엔 사소한 일이라고 우울증 환자에게는 너무 고통스런 상황인 이런 얘기를 할 수가 있는 데,
예를 들면
소아 우울증 환자가 학교에서 "같은 여자 아이가 괴롭힌다"하면
"너가 그 여자아이 보다 더 예뻐서 질투해서 그럴 수도 있지 않을 까?"
만약 남자 아이가 괴롭혀 우울해져 있으면
"그 남자아이가 너가 예뻐서 좋아 하는 데, 그걸 말로 표현하기게 쑥스러워서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환자의 자존감을 높여 주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시각을 가지게 하여 다음날
학교 갔을 때 자신감을 가지고 괴롭히는 상황을 맞을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가족이 환자의 마음을 정돈시키는 심리적 치료의 도움을 줄 때는 가장 중요한 선행조건은 가족에게 마음가 생각을 얘기 할 수 있도록
환자에게 "나는 너편이다.너의 고통을 모두 이해는 못해도 가슴 아파하고,어떻게던 도와 주고 싶다"는 생각이 환자에게 느껴지게
환자에게 상담자로서의 가족인 신뢰감을 확실히 심어 줘야 합니다,
그래야 환자가 사소한 일의 그복잡한 심경을 얘기하지, 신뢰감이 없으면 입을 다물고 사소한 일에도 환자의 뇌는 혼돈과 고통의 늪을 혼자서 헤메게 되고
병은 악화 됩니다.
자살한 젊은이 들의 부모처럼 평소 환자의 상태에 대해 무심했던 가족에게는 비정상적인 안테나가 발달되어 예민한 우울증 환자들은 절대 자기의 속내와 생각을
가족에게 털어 놓지 않습니다.
(소아 청소년의 경우)
신체적 질환 뿐 아니라 정신적 질환이 있는 소아 청소년이 있는 경우,
그 병의 투병은 소아 청소년 뿐 아니라 보호자인 부모가 투병 생활을 같이 해야
빨리 회복이 됩니다.
바벨론 포로 시절 "엄마의 언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목사님이 강해 하셨듯이
엄마의 마음이 정중동의 마음으로 되도록이면 밝은 표정으로 아이에게 대해야 하고,
특히 엄마의 미소는 아이의 마음을 밝게 만들고 심리적 안정에 가장 큰 도움이 됩니다.
"빨리 나아서 공부를 따라 가야 하는 데"하는 조급하게 서두르면 안됩니다.
아이의 정서적 성장의 배지가 되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온가족이 다 함께 참여하여 집안의 분위기를 만듬과 동시에 정신과 가족 상담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와 같이 하는 놀이와 운동을 통한 신체적 접촉은 심리 안정과 동시에 아이의 자존감을 향상시켜 자신감을 줍니다.
밖에서의 운동은 좋은 치료인데 약간의 push는 하되 강요는 안됩니다.
어느 정도의 push가 좋은 지는 부모가 아이의 입장이 되어서
"내가 힘이 빠졌을 경우 얼마나 push를 당하면 힘들고 짜증이 날 것 같은 지"
반대로 생각해 보면 됩니다.
학업의 결과나 학교생활에서 태도나 친구와의 관계에서 부모 맘이 타고 마음에 안들더라도,
절대 비난을 하면 안되고 한발 짝 떨어져서 기다리고 지켜봐 주고
"스스로 잘 할 수 있다"는 믿음과 격려를 해줘야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경우는 부모가 아이의 신뢰를 얻은 경우이고
만약 아이로 부터 평소 신뢰를 못얻은 부모라면
아이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신뢰를 얻는 것이 급선무 입니다.
신뢰는 하루 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잘못을 먼저 인식하고 천천히 다가가고 ,아이의 정서를 공감할려고 노력하고,
"왜 그랬니"식의 명령어적이고 다그치는 개입을 자제하고
부모가 아이를 "정말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아이에게 느끼게 해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내 자식을 사랑하는 이유 세가지"를
날마다 볼려고 해야 하고, 아이에게 말해 줍니다.
상투적이고 가식적 의무적으로가 아닌 구체적으로 볼려고 해야 합니다.
"볼것이 없다"는 부모도 있을 수 있지만
볼려고 하면 날마다 아이의 장점과 잘한 일 세가지가 보입니다.
가식적이고 의무적으로 하면 안테나가 예민한 우울증 환아는 금방 느낍니다.
정신과에서는 소아 우울증 치료의 심리적 치료로 미술치료를 많이 하는 데,
이를 통해 정서 장애와 부정적 생각을 개선시켜 자신감과 자존감을 향상 시킬 수가 있고, 미술치료로 어느 정도의 개선이 있으면 다른 소아 우울증 환아와 같이 집단 미술치료를 함으로써 관계개선의 효과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병원치료와 가정에서의 심리적 환경적 치료로 치료가 되었다면
모든 병에는 재발이 있습니다.
암도 5년 동안 재발이 없어야 어느 정도 안심하는 단계가 됩니다.
병원에서 치료가 끝났다고 해도 아이의 우울증이 생긴 원인 요인과 악화 요인을 잘 생각 하면서
정중동의 마음으로,
아이의 상태가 너무 좋아져도 너무 기뻐 하는 것을 자제해야 하고,
아이의 상태가 그전처럼 약간 안좋아 지는 것 같아도 너무 절망하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아이의 상태를 당분간 잘 지켜 보면서
기존에 해왔던 아이들의 심리적 배지인 가정의 화평이라던 지,아이와 원활한 소통을 하면서.아이가 좋아하는 음악,운동,미술등을 시키면서
적극적 개입이나 비난을 자제하고 "잘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항상 사랑한다"는 믿음을 주면서 한 발 짝 떨어져 "항상 지켜 본다"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재발을 방지 할 수 있습니다.
(목장 나눔을 이용한 심리적 치료의 저의 예)
전원주택은 외진 곳에 있어 도로가 외길이 많습니다.
멀리서 다른 차가 내려 오면 넓은 길 가까운 곳의 차는 잠시 기다렸다가 다른 차가 지나가면 올라 갑니다.
그런데 어느날 밤 갑자기 살 물건이 있어 100m언덕 외길을 반쯤 내려 가고 있었는 데,넓은 평지에 있는 차가 "자기가 올라 갈테니 내려 오지 말고 언덕 50m를 다시 후진해서 가라"는 뜻으로
쌍 라이트를 켜고 빵빵 소리를 크게 내면서 내려오는 내차에 경고를 보내는 것입니다.
"저런 경우가 없는 인간이 있나"하고 상대차가 서 있는 넓은 길 가까이 갔습니다.
불과 5m 만 후진하면 되는 데 그차는 계속 서있습니다.
창문을 열고 손짓을 하며 "차를 뒤로 빼"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래도 그차는 가만히 서있습니다.
또 한 번 더 손짓을 하고 소리를 치자 그 때서야 후진을 합니다.
지나가면서 보니 30대 초반의 부부였습니다.
그런데 가면서 "기분 나쁘다"는 표현으로 크략션을 빠-앙하면서 누루고 가는 것입니다.
너무 화가 나서 차에서 내렸는 데, 그차는 쏜살 같이 언덕을 올라가면서 사라졌습니다.
그 이후 그 젊은 부부가 "날 경멸하고 무시하면서 크락션을 누루고 같다"는 생각에
항상 그 상황만 생각하면서 분노로 나의 아픈뇌를 더 아프게 하며 일 주일을 보냈습니다.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있듯이 인생에 20대 후반,30대 후반 50대초반의 세 번의 큰 전환점이 있는 데,
30대 초반의 그 젊은 부부는 "다가 올 자식 고난 질병 고난,물질 고난 등을 예측 하지 못하는 무서울 것이 없는, 지식은 많으나 지혜가 부족하고 겸손하지 못하고,교만 할 수 있는 나이라서 그러니 이해하고 흘려 버리자"라고
나의 병으로 약해진 이성의 힘으로, 통제 안되는 부정적 자아의 원시 뇌를 다독이며 설득할려고 해도
나의 아픈 뇌는 말을 듣질 않고 설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텃밭을 갈다가도 마당에 앉아 그 언덕길을 보면서 그 젊은 부부차가 오지 않나
째려 보고 있고,기타 연습을 하다가도 불현듯이 마당에 나가 앉아서
그 언덕 길을 분노의 눈으로 계속 쳐다 보고 있습니다.
분노로 일 주일을 보내며, 다른이들에게 사소한 일이지만 내게는 일 주일을 잠을 못이루게 하는 그 일을 목장에서 open하였습니다.
목자님도 "운전하면서 그런 일을 많이 경험했고 그 때는 이렇게 했다 "는
다른 사람의 시각의 말을 듣고서
목장 나눔뒤에야"다른 사람들도 이런 경우가 있었고 그 때는 나와는 다른 생각을 했구나"라고 느껴지고,그 때서야 나의 아픈 뇌는 흥분을 가라 앉히기 시작했습니다.
그 젊은 부부는 어두워 나의 얼굴을 보지도 뭇했고, 동네 사람차가 아니라 손님차였으므로 밤에 처음 본 그 언덕 길의 후진해야 할 50m가 그 30대 초반의 운전자에게는 멀리서 보면 10m도 안되게 보였을 수도 있다는
나의 인지적 오류를 알게 되었고 그 상황에 객관적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목장 나눔이였습니다.
사소한 일로 병이 악화 될 시점에 가족 또는 우울증 환자를 이해해 줄려는 따뜻한 맘을 가진 목원들의 객관적 다른 시각의 조언이 흥분한 병적인 우울증 환자의
뇌를 안정시켜 줄 수 있는 심리적 치료 역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목장 나눔시 가장 주의 할점은
상대적 비교감을 주는 말을 절대 해서는 안됩니다.
목장나눔시 물론 세상 모임과 같이 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우울증 환자는 일반인들과의 인간 관계가 어려워서 세상과는 정화된 인간들이 있는 목장에를 왔는 데, 세상 나눔 때 와같이 상대적 비교를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말은 절대 삼가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아무개 집사님은 나눔 때 어떻게 말을 그렇게 잘할 수 있나요"라던지
"아무개 집사님 딸이 이 번에 유명대를 가서 참 좋겠네요"하던지
이런 말을 들은 환자는 "자신은 에너지가 없어 남의 말을 듣기도 힘들고 말을 잘하기도 힘든데 "말을 잘하는 집사님이 공개적으로 부각이 되면
자신의 상대적 존재감의 저하를 느끼고 목장 나눔의 자신감을 잃게 됩니다.
(물론 성경은 그럴 뜻하게 포장된 말 잔치 보다는 마음과 행함이 더 중요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우울증으로 에너지가 없어 자식에게 잘 못해주고 있는 데,
다른 자식의 유명 대학 입학 축하가 공개적으로 부각되면,
자기 자식에게 부족한 자신을 자학 할 수도 있습니다
(환자의 마음 가짐)
(1)가장 중요한 것은 뇌의 병이라는 병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감기가 걸려서 생활에 불편이 있어 내과를 가듯이, 치아가 아파고 불편해서 치
과에 가서 적극적 치료를 하듯이,마음을 관장하는 뇌의 병으로 마음이 우울하고
의욕이 없어 생활에 불편하므로 아픈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과로 간다는 것
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2)본인의 의지가 약해서 생긴 병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아무리 건강하게 보이는 사람도 10가지 이상의 질환을 갖고 살아갑니다.
우울증 환자도 사람이 가진 10가지 질환 중에 하나로 뇌의 병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정신질환이 없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비관하고
자신없어 하지 않아야 합니다.
(3)다른 질환과 같이 치료 받으면 좋아 질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신체의 내과적 질환이 꾸준한 약물치료와 식이요법등으로 잘 치료가 되듯이
뇌의 내과적 질환인 우울증도 치료가 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4)모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메인 센터인 뇌의 질환이므로, 판단 능력이 떨어져
있으므로 퇴직,이혼,같은 중요한 결정은 치료 후 상태가 안정이 되었을 때 결정
해야 합니다.
(5)상대에 대한 기대치를 "O"으로
"내가 그렇게 믿고 살아 왔는 데......."
"내가 이렇게 까지 했는 데 당신이 이렇게 할 수 있어?"하고 분해 합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 키웠는 데 이럴 수 있어"라고 자기가 희생하고 노력한 것을
상대가 알아주지 않고뒷퉁수를 맞고 또한 댓가가 없음을 억울해 합니다.
목장 나눔에서 "그렇게,이렇게,어떻게"의 억울한 심경을 open하면서 속의
분노를 표출을 하고,
다른 목원의 사건들을 들으면서 자신의 사건을 객관화시킬수 있고
설교 말씀과 QT와 다른 목원의 적용의 모범을 보면서
성경에서 인간은 믿음의 대상도 아니라고 했지만 기대의 대상도 아님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나의 희생,인내,억울함을 인간이 아닌 주님만 알아 주면 된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억울함과 원망의 맘이 희석이 되어 집니다.
(6)"내탓이요"의 자학은 금물입니다.
우울증 환자는 자존감이 낮아서 "일이 잘된 것은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이고
생각하고 일이 안 된 것은 내가 못난 탓이라고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정신 질환인 "한"이 많은 어머니들은
자식이 잘못되면 자신의 팔자가 나빠서 그렇고, 자식이 잘되면 조상님 탓이라
생각합니다.
자식이 잘되면 본인의 헌신적 뒷바라지도 기여 했다고 자부심을 가져야 되고,
못되면 내 탓 만은 아니고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그렇게 된것이라
고 합리적인 해석을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7)"누구 때문에"가 아니라 "나 자신 때문에"하고 해석하는 훈련입니다.
지금 내가 화나고 슬픈 것은 남편도 자식 때문에가 아니라 나의 뇌가 아파서
그런 감정이 생기는 것이지,
객관적으로 정말 남편과 자식이 화나게 슬프게 한 행동이나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비정상적인 감정이 상대의 원인 제공이라고 생각하면 아픈 뇌는 그
상대를 볼 때 마다 생각 할 때 마다, 지속적으로 분노하면서 아픈 뇌를 더욱
악화 시키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분노와 슬픔은 자기의 아픈 뇌 때문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저의 예를 들면
저는 얼마 전 병원을 정리 하면서 항상 나와 고생을 같이한 실장에게
그 고마움과 남은 병원정리를 부탁하는 의미에서 그 직원 퇴직금 보다 훨씬
많은 액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병원정리를 위한 남은 서류가 직원에게서 왔는 데
등기 비용이 수신자 부담이였습니다.
"내가 그 많은 퇴직금을 주었는 데, 고작 등기비 몇 천 원이 아까워서 후불로해"
하면서 배신감에 분노하고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나 심리적 치료의 일환인 "나 자신 때문에"를 적용하여
"이 분노와
고통은 고작 몇 천 원 아낄려고 한 그 직원 때문이 아니고 나의 뇌가
아파서 이렇게 배신감을 느끼고 고통스러 워하는 것이다"라고
계속 내 자신에게 주입하여 아픈 뇌를 설득하니 자고 나니
분노의 마음이 가라 앉았습니다
(8)과거는 지우고 오직 현재만 집중하는 훈련을 합니다.
우울증을 유발시켰던 과거의 일이나,뇌가 아파서 실수 했거나, 미숙하게 보였
던 일들을 생각하지 않을려는 훈련을 하고 그러기 위해 현재 집중할 수 있는
교회 말씀에 올인한다 던지 아님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가벼운 취미활동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9)감정표현을 제 때 그 때 적절해 잘해야 합니다.
우울증 환자는 감정 표현이 무척 서투릅니다.
상대의 기분 상하게 하는 갑작스런 농담이나 행동에 그 때 그 떼 적절히 진담
같은 농담이나 불쾌한 표정이나 행동으로 대처 해야 하는 데
아픈 뇌는 회로가 엉켜 있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적절한 감정표현으로 대처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는 어안이 벙벙히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 뒤늦게 반응하여
자신을 자책하거나 상대에 대한 분노가 가시가 되어 아픈뇌를 지속적으로
찔러 병을 악화 시키기도 합니다
.
참거나 삭이지 말고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일이나 상황이 짜증이 난다면 소리를 크게 지른다든지,
고민이 생기면 가까운 사람이나 목장에서 의식적으로 털어 놓으면서 감정을
표출하도록 합니다
.
얼마전, 아내와 딸을 데리고 인질극을 벌이다가 투신한 조울증 환자도,
김밥 나라에서 김밥을 먹다가 갑자기 식칼을 들고 경찰서로가서 경찰관을 찌를
려고 난동을 부린 우울증 환자도
한 개인의 아무 생각 없이 한 말과 행동에 불쾌감이 누적이 되어 순간적으로
폭언을 했다고 한 우리 교회 목자님도
평소 주위사람들에게 그 때 그 때 제 때 제 때 적절한 감정 표현을 하지 않아.
불쾌감이 누적이 되어 분노 조절이 안되어 폭발하여
과격한 말과 극단적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의 아내는 4년 전 저의 폭풍과도 같은 open의 사건으로 충격을 받아 우울증 약물 치료를 받아 왔습니다.
그래도 우리들 교회 잘 붙어 있었던 덕에
설교 말씀과 목장 모임에서의 나눔과 다른 사람의 사건과 적용을 보고 들어면서
본인도 모르게 심리 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정신과 의사를 만나면서
"내가 왜 그 동안 내 자신을 깔 쥐어 뜯고 살았는 지 모르겠다. 억울하다"라고
얘기 했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뭐가 억울한가요"물었습니다.
아내는 "내 자신을 그동안 이렇게 방치 하고 살았던 것이 억울하다"하고 얘기 했고
그러자 의사는 약물및 심리적 치료의 호전을 인지하고 약의 용량을 반으로 줄렸고
그 다음에도 또 반으로 줄렸습니다.
곹 약물을 끊을 것 입니다.
아내가 의사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 우리들 교회의 목장에 붙어 있으 면서
"어떻게,이렇게,그렇게"의 분노를 자신의 내면의 문제로 인식하기시작했고
남편에 대한 기대치를 "O"으로 인지되고 자식의 문제도 자신의 탓이 아님을 인지 하기 시작 하는 등의 병원에서 받지 않았던 심리적 치료가 약물치료 와 함께
교회 훈련을 통해 자연적으로 습득 되는 심리적 치료에 의해
빠른 병의 치유와 함께 지금은 목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치유와 함께 목자로 세워 주셔서 의욕적으로 교회일을 할 수 있게 해주시고
왕따 당했던 큰 딸이 주일 날 아침일찍 교회 가서 교회에 교회 친구들과 계속 있다가 밤늦게 오고,.
둘 째 딸도 부부간의 불화로 인한 우울증의 치료가 끝나고 이제는 제자 훈련도 자원해서 받았고 QT상도 두 번 받게 해주시고
우리들교회에서 정말 수지 맞는 장사를 했습니다.
이런 영적 풍년을 맞이하게 해 주신 주님과 우리들 교회에 감사합니다.
저의 중증 조울증의 고통은 open의 내용으로 인한 죄의 댓가로 알고
기분 좋게 친구같이 데리고 살아 갈려고 합니다.
다음은 심리적 치료에 대인관계개선을 위하여에 대하여
그리고 환경적 치료에 대해서 나누어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