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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팔목에 연보라색 팔찌가 아직도 있습니까? 조회수 : 1677
  작성자 : 송태성 작성일 : 2011-01-07

 

  일주일전 송구영신 예배때 모든 교인들에게 연보라색 팔찌를 나눠 주었습니다.

이름하여 감사팔찌!

불평할 때마다 반대편 팔목으로 옮겨 차도록 해서 우리가 얼마나 불평하는 존재인지, 감사할 줄 모르는 존재인지를 깨닫고 불평의 횟수를 줄여나가는 훈련을 위한 팔찌입니다.

 

  저는 새해 첫 날 씻으면서 벗어 놓았다가 다시 차려니 왠지 거추장스러울 것 같고, 또 이거 하고 있다고 불평이 얼마나 없어지겠어? 하는 마음이 들어 다시 차지 않았습니다. 주일 예배때 목사님께서 확인하셨을 때 ‘아차! 다시 차야지’ 했는데 집에 와서는 또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계속 안 차고 다녔습니다. (불순종의 영은 이렇게 역사하는 것 같습니다. 해서는 안 될 이유를 생각나게 하고 해봐야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는 망각하게 만듭니다.)

 

  어제 목장모임 하면서 나눌 때 이 팔찌를 차고 있던 목장식구들은 팔찌의 놀라운 효능을 간증하셨습니다. 시댁식구들과 큰 갈등이 있을 뻔한 위기를 감사팔찌를 보고 “예”하는 한 마디로 무사히 넘긴 경우, 남을 정죄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자신도 같은 잘못을 저질렀던 때가 생각나 원망하지 않고 넘어간 경우, 잔소리 할 때마다 자녀들이 “엄마! 팔찌!” 해서 자신이 얼마나 잔소리꾼이고 불평쟁이였던가를 깨달은 경우, 갈등과 분쟁의 순간마다 팔찌를 보며 돌이키고 무사히 넘어간 많은 간증을 해주셨습니다. 목자로서 아주 부끄러웠습니다. 말씀에 불순종한 저는 일주일 내내 평소보다도 더 많은 번민과 짜증으로 한 주를 보내었습니다. 당장 감사팔찌를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지금 손목에 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전투 전에 요단강을 건널 때 돌 열 두 개를 길갈에다 세웁니다. 나중에 후손이 이 돌들이 뭐예요? 하고 물을 때, 하나님께서 큰 능력을 베푸셔서 요단강을 멈추게 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하게 합니다. 그 돌들은 기념비, 즉 기억나게 하는 물건입니다. 우리는 새해, 첫 시간에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기로 결심했고, 그 결심을 기억나게 하는 물건을 팔목에 차고 다닙니다. 팔찌에 자세히 보시면 영어로 No Complaint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complaint이라는 말은 불평이란 뜻입니다. 불평하지 않기 혹은 불평제로 라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팔찌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하고 다닙니다.

 

  오늘 새벽기도 시간에 목사님께서 중요한 영적원리 하나를 말씀해주셨습니다.

바로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3;14하).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받은 바 되어서 오히려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율법으로는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될 수 없는 의로움을 받을 수 있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또한 성령의 약속을 받아 우리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시고 성령의 권능도 같이 받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모든 자유를 잃고 혼자의 힘으로 안간힘을 써서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 성령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성령충만을 받고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 뜻을 알게 하시고 또 행하게 하시고, 되게 하심을 체험하는 삶이라고 목사님께서 설교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고 그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그야말로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의 삶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팔찌는 자신의 결심을 기억나게 하는 기념물입니다. 그래! 내가 불평하지 않기로 결심했지! 그래서 이를 악물고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100부터 거꾸로 세기를 수십 번 해야 될 지도 모릅니다. 이 상황, 혹은 상대방이 옳고 내가 틀렸다는 이유를 머리를 짜내어서 생각해 내어야 됩니다. 그러다 결국은 폭발하고 팔찌를 바꿔차고는 나중에는 자신을 학대합니다. 그것도 못 참아서! 하면서

하지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성령님의 약속까지 받은 우리는 그 팔찌는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생각나게 하는 기념물입니다. 성령님께서 강권적으로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아주 특수한 경우이고 대개는 비둘기 같이 온유하신 성령님은 우리의 요청에 응답하셔서 역사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불평이 터져 나올 때 그 팔찌를 보고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 구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우리의 영에도 역사하시지만, 우리의 지성, 감정, 의지에 역사하십니다. 지식의 은사를 주셔서 이 상황이나 상대방에 대한 바른 깨달음을 주시거나, 나 역시 같은 잘못을 저질렀던 적이 있음을 기억나게 해주시기도 합니다. 끓어오르는 분노는 어느새 긍휼의 마음으로 바뀝니다. 분노와 정죄의 말이 튀어나올 뻔한 상황에서 순종의 대답이 나오게 하고 조용히 기도하게 만듭니다.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벌써 벗어 던졌던 분들은 다시 찾아서 차고, 성령님을 우리 삶 한 가운데 모셔 들입시다 그 능력을 체험합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제안 아닌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 시민교회는 크리스마스다 연말연시다 남들이 들떠 있고 떠들썩한 행사를 할 때 오히려 차분하게 지내는 전통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탄예배, 송구영신예배 빼고는 특별한 행사 없이 조용히 넘어갑니다. 게다가 시민교회 성도님들이 다들 점잖으셔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여파가 나눔터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벌써 이주일째 새 글이 전혀 올라오지 않고 있습니다(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차분하다 못해 침체되고 오히려 죽어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나눔터는 활발하게 삶을 나누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꼭 영적으로 의미있는 글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느끼거나 체험한 사소한 일들, 받은 은혜, 하다 못해 떠도는 우스개 소리라도 자주 자주 올려 주시고 또 서로 댓글로 달아가며 정을 나누고 기쁨과 위로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제가 나눔터에 대하여 복과 저주를 선포하겠습니다.

 

  위 제안에 순종하여 나눔터에도 자주 들어오고 사소한 일상을 글로 올리며 댓글로 위로와 기쁨을 나누는 사람은, 하는 모든 일과 가정과 자녀들이 복을 받을지어다.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가 복을 받고 키보드와 마우스가 복을 받을지어다. 컴퓨터를 켤 때도 복을 받고 끌 때도 복을 받을지어다. 마우스를 클릭할 때마다 영적으로 유익한 정보와 돈 버는 정보가 주루룩 뜰지어다. 음란과 폭력은 한 길로 들어왔다가 얼씬도 못하고 일곱 길로 쫓겨갈지어다. 자녀들은 게임과 폭력을 배우기보다는 사랑과 나눔을 배울지어다. 아름다운 나눔의 글을 올리는 손가락과 그 글을 쓰게 만드는 머리도 복을 받을지어다. 하는 일마다 쓰는 글마다 하나님 주시는 복을 받을지어다. (또 뭐 없나? 있으면 댓글로 달아주세요)

 

  이 제안에 불순종하여 끝끝내 나눔터를 글 올리기를 외면하고 읽기만 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걸핏하면 컴퓨터가 꺼질지어다. 초고속 인터넷 깔아도 느려 터질 지어다. 고생해서 작성한 문서 한 순간에 날아갈 지어다.(이건 좀 심한가요?) 수준 낮은 글이라고 비웃는 그 입술은 이 추운 겨울에 갈라져 피가 날지어다. 올린 글을 읽고 비방하고 거짓을 옮기는 혀는 갈라져서 맛있는 음식을 두고도 먹지 못할지어다. 실컷 저장한 정보가 나중에 찾으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할 지어다. 기타 등등

 

  정초부터 저주의 글을 올려 죄송합니다만 아무튼 나눔터를 살립시다. 나눔터를 사랑하여 하늘 복 받읍시다.

(글을 올리려고 보니 조금 전에 손병철 형제님께서 감동적인 글을 올려 주셨습니다. 올해의 스타트를 끊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에서 열거한 모든 복 위에 건강의 복까지 주시기를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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