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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왜 안 될까? | 조회수 : 1475 |
작성자 : 송태성 | 작성일 : 2010-08-09 |
왜 안 될까?
되게 하려면 어떡해야 하나?
저는 8년 전부터 지금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가진 시기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병원직원을 한 명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왜 안 될까? 그 답을 어제 찾았습니다. 어쩌면 알고 있으면서도 제가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성령충만하지 못해서입니다.
목사님께서 어제 설교 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축복, 즉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고 오순절 사건 이후 그 약속은 성취되어 지금은 누구나 성령을 받을 수 있는 복되고 복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면 누구나 성령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왜 성령님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지 않는가? 그 이유는 성령님의 나타나심은 자동적으로 되지 않고 성령충만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성령충만은 바로 복음사역을 잘 감당하라고 허락하신 것이라고, 성령충만하여 말과 삶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자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날 목자세미나 때에도 강사목사님이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구원 받는 순간 성령님은 나에게 오시고 영원히 떠나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구원”과 “성령으로 흘러 넘치는 것”은 다르다고, 즉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내 영을 채우고 흘러넘쳐 혼을 사로잡고 육을 제압하며 나를 온전히 지배하시고 내 주변까지 흘러 넘치는 상태가 바로 예수님께서 요한 복음 7장 38절에 큰 소리로 말씀하신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의 의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복음의 말씀자체가 능력이 되어 전도가 되고 그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대개 모르는 사람에게 전도할 때입니다. 이상하게도 아는 사람, 특히 잘 아는 사람, 즉 가족, 남편이나 부모, 자식들. 친척들, 그리고 직장 동료 같은 가까운 사람은 복음 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 사람과의 관계(이미 알고 있는 선입견?)가 복음 증거를 막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믿기 전이나 온전히 변화되기 전의 모습, 그리고 아직도 남아있는 악한 습관들이 복음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예수님도 고향목회가 잘 안 되었고 기적도 잘 안 나타났고 오히려 이를 이상히 여기셨다고 합니다(마가복음6장).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아는 사람들을 전도하지 못하는 것이 정당화되어서는 안됩니다.
즉 성령충만은 복음전파를 위해서 주어졌고, 성령충만으로 말과 삶을 통해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성령충만하지 못하고 그런 척만 하니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믿은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뜨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전했지만 그 냉랭한 반응에 상처입고 오히려 이제는 말도 꺼내기가 힘들어져 버렸습니다. 마귀가 얼마나 기뻐하는 상황입니까?
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는가?
그 답은 이미 그 전날 주어졌습니다.
성령이 흘러넘치는 목장사역이라는 제목으로 전주의 기쁨넘치는 교회 김영주 목사님을 모시고 목자세미나를 가졌습니다.
강사목사님께서 방언이 성령충만을 받는 실제적인 방법 혹은 통로중 하나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사도행전5;32의 말씀을 인용하여 성령이 시키는대로 순종한다는 의미에서 볼 때 방언이 성령으로 흘러넘치게 되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방언 그 자체보다는 성령으로 흘러넘치는 것이 목적이므로 그러기 위해서 방언을 계속해서 큰 소리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실제로 매일 하루 30분이상씩 40일 이상을 하면 큰 은혜의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방언을 그야말로 시부지기 받았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 데 입속에서 어떤 반복되는 소리가 있어 그것을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그러니 이상한 소리가 되어 나왔습니다. 이것이 방언이구나 어! 그런데 방언을 받으면 어떤 특별한 체험이 있다던데,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경험하기도 하고, 눈물 콧물이 흐르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런데 저의 경우 정신은 말짱하고 계속 하니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입만 아프고, 에이 방언 아닌갑다. 그냥 남들 하는 소리 흉내내어서 내가 만들어낸 방언인가보다 하고 그냥 무시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기도하다가 한 번씩 그런 소리가 날 때도 있었는데, 좀 더 해봐도 뜻도 모르니 그냥 하다가 그만 두고 했습니다. 그런데 강사목사님께서 데니스 베넷 목사님의 예를 들면서 오히려 이런 태도가 사단의 장난에 넘어가서 성령님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미나 중에 기도할 때도 계속해서 큰 소리로 하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목이 쉴 정도로 큰 소리로 계속해서 부르짖었습니다. 이미 오전부터 큰 은혜를 받고 있던 터라 성령하나님의 채워주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방언을 하지 않으시던 목자 목녀님들 중에 많은 분들(40명이상)이 방언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터진다는 표현은 틀렸다고 합니다. 내가 성령님의 시키심을 따라 말하기를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순종해서 말하기를 시작하면 된다고 합니다).
방언으로 계속 기도하면 성령충만해질 수 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두 달 동안 하루 30분씩 새벽에 방언으로 기도하자. 성령님이 감동을 주시면 더 하더라도 일단 강사목사님 시키는 대로 30분씩이라도 하자. 두 달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한 번 보자, 진짜로 내 배에서 생수가 흘러나는지 함 해보자. 결심했습니다. 그러니 걱정이 생깁니다. 내가 큰 소리로 하면 다른 사람들 기도하는데 방해가 안 될까? 쪽팔릴 것 같은데? 두 달 뒤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에이 모르겠다. 일단 한 번 해보자
그리고 오늘 새벽기도에 나왔습니다. 목사님께서 기도합시다 말씀하시고 불이 꺼지자 조금 있으니, 전에는 제 기도에 집중하느라 못 느꼈는데, 그 시간에 많은 분들이 큰 소리로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끄럽다거나 남에게 방해된다거나 하는 생각을 버리고 마음껏 방언으로 기도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의 생각과 혀와 입을 이끄시는 대로 순종했습니다. 의식은 뚜렷했습니다. 단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이 나라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어 많은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느덧 주위의 기도하는 소리가 조용해지고 저도 소리를 줄이고 시계를 보니 6시 3분, 딱 30분이 흘렀습니다. 30분정도 더 조용히 기도하다가 나왔습니다.
하루 했을 뿐인데 많은 변화가 느껴집니다.
일단 화가 나지 않습니다. 저는 성격이 급하고 마음이 좁아서 화를 잘 냅니다.
아침에 아들 깨우는 것이 많이 힘듭니다. 아들 별명이 “오분만”입니다. 잠잘 때 깨우면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오분만입니다. 고등학교 갔다고 이 더운 여름에도 아침 일찍 보충수업 갑니다. 그래서 아침에, 안스러워서 조금 늦게 깨우면 “오분만”, 그렇게 실랑이 하다가 큰 소리 내고, 저도 마음 상하고 아들도 마음 상하고, 그런데 오늘은 성령님이 지혜를 주셨습니다. 조금 일찍 깨웠습니다. 역시 오분만 합니다. 아직 시간이 있기에 저는 “그래 피곤하지, 십분 더 자라”, 그리고 민수기 6장의 축복기도를 해주는데 나도 모르게 이 말이 나왔습니다. “십분이 한 시간 같을지어다.” 그러자 아들이 아멘하고 돌아누워 잡니다. 정확히 십분 후 깨웠을 때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갔습니다. 아침 먹을때 물어보니 정말로 한 시간 더 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병원에서도 더욱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환자를 대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도 이전에 나를 괴롭히던 문제가 이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두 달 뒤가 기대됩니다.
더 풍성한 내용으로 이 간증문의 후편을 쓸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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