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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20731 ‘나의’ 하나님 (마태복음 27:45-54) 조회수 : 336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22-08-02

20220731 ‘나의’ 하나님 (마태복음 27:45-54)

1.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예수님은 억지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게 아니다. 예수님은 의지적으로 십자가를 선택하셨고, 그 고통을 감당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위의 예수님의 모습은 너무나 비참하고 무능력한 모습이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을 우리가 감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겪으신 고통을 세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2. 예수님의 첫 번째 고통: 육체적 고통
십자가는 인간이 발명한 사형 방법 중에서 가장 잔인한 사형법이다. 왜냐하면 가장 큰 고통을 가장 길게 느끼며 죽도록 고안된 사형법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채찍질을 많이 당하셨고, 옆구리에 창을 찔리셨기에, 6시간 동안 고통을 받으신 후에 숨을 거두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가혹한 육체적 고통을 당하셨다.

3. 예수님의 두 번째 고통: 영혼의 고통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태초부터 서로 사랑하며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오셨다. 그랬던 성자께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성부가 성자를 버리고 외면하는 처절한 경험을 하셨다. 세상 모든 사람이 받아야 할 그 저주가 오롯이 예수님께 쏟아졌기에 예수님의 영혼은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느껴야 했다. 본래 죄인인 인간이 받아야 할 영적 단절과 고통이었다. 

4. 예수님의 세 번째 고통: 사회적 고통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대적자들의 모욕과 조롱은 절정에 달했고,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거기에 동참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마음만 먹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가진 능력을 증명하실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것을 참으셨다. 하나님의 아들을 사칭하는 자라고 조롱당하며, 십자가 위에서 벌거벗긴 채 매달려 수치를 당하셔야 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 21:23) 유대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것은 하나님이 예수의 죄를 벌하시는 거라 생각했다. 예수님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악의 수치를 당하면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다. 

5. 나의 ‘하나님’
예수님은 감당하기 어려운 육적, 영적, 사회적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절규하셨다. 그런데 이 외침을 하나님께 대한 원망의 절규로 읽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성부를 “나의 하나님”, “my God”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예수님은 성부를 부르실 때에 “내 아버지”(my father)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셨다. 그런데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부르신 이유는,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고 계시기 때문이다. 재판장으로서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의 사형집행을 허락하셨고, 막지 않으셨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그저 하나님이라 부를 수밖에 없었다.

6. ‘나의’ 하나님
그런데 왜 예수님은 그냥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을까? 예수님은 최악의 고통과 절망 속에 계셨지만, 영혼 깊은 곳에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를 갖고 계셨던 거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두려워하셨지만, 성부께 순종하셨다. 왜냐하면 십자가 죽음이 하나님의 뜻이요 계획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한글성경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마태복음 16:21에는 헬라어 “데이”(δεῖ)라는 동사가 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it is necessary”)는 ‘신적 필연’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야만 하고, 고난을 받아야 하고, 죽임을 당해야 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나타내셨다.(마 16:21)” 또한, 예수님은 시편 22편을 인용하시면서 다윗의 마음에 예수님 자신의 마음을 대입하셨다. 다윗처럼 예수님도 엄청난 고난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셨지만, 다윗처럼 예수님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두려움을 이겨내셨던 것이다.

7. 십자가를 견디신 이유: 새로운 살 길과 최후 부활을 주시려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예수님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성부를 “나의 하나님”이라 부르면서 그분을 신뢰한 이유는, 단지 자신의 부활을 원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타인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속물이 되며, 그들에게 부활 생명을 나눠 주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여 자신을 온전히 드리신 것이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마 27:51上). 본래 성소는 제사장만, 지성소는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의 장소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고 교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저와 여러분에게 새로운 살 길과 부활을 주었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죽을 길 밖에 없던 저와 여러분에게 살 길이 열렸다. 죽음으로 그칠 수밖에 없던 저와 여러분에게 부활이 약속되었다. 살 길과 부활을 선물로 받은 자로서 기쁨과 감사와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8. 결론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 저를 버리신 것입니까?”라고 의심하거나, 절규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마음에 어둠이 가득차고, 절망이 가득차고, 희망이란 단어는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상황처럼 보여도, 분명 내 마음속 어딘가에 그분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은 믿음의 빛을 찾을 수 있을 줄로 믿는다. 예수님이 십자가라는 너무나 아프고 수치스러운 고통의 자리로 나아가신 것은 결국 저와 여러분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러한 놀라운 은혜의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붙드는 우리가 되자.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바라볼 때 소망이 찾아옴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사망의 그림자가 우리를 덮을지라도 생명의 빛이 되시는 “나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따라감으로, 마침내 주님과 함께 승리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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