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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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0407 누가 예수님을 책잡을 수 있는가? (누가복음 20장 19절 – 40절) 조회수 : 1639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9-04-05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의 행동은 디모데후서 말씀을 떠오르게 한다.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딤후3:7-8). 그들은 비유 속 악한 농부의 길(9-19절)을 택하고야 만다.

Ⅰ. 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19-26)

예수님께 대한 본격적인 시험이 시작되었다. 종교 지도자들의 목적은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세금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했다. 그들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로마에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1>악한 도모 –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할 묘안을 생각해낸 이들은 ‘진리로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신다(19절)’며 아첨의 말을 늘어놓는다. 불의의 사람은 거짓과 아첨, 악의와 위선으로 행하나 주님의 사람은 참되고 진실하다. 말과 행동에 거짓이 없어야 하고 외모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2>절묘한 질문 – 바리새인들은 주님께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지 묻는다. 동전을 요구하시는 주님께 천연덕스럽게 데나리온을 꺼내는 모습은 세성을 경멸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좇는 이중성을 보여준다. 제자는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하며 고백한 대로 살아야 한다.

3>놀라운 대답 – 황제 얼굴이 새겨진 동전을 보시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신다. 사람들을 놀라며 침묵한다. 동전에 황제의 형상이 새겨져 있듯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다. 하나님의 것이니 몸과 마음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4>그리스도인의 두 가지 의무 – 우리가 사회에서 일정한 유익을 얻는 대신에 우리는 사회에 대한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병역의 의무나 납세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할 의무를 가진다. 세상의 권위에 순종하여야한다.

롬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벧전2:13-14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강요할 때는 거절한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행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Ⅱ. 부활에 관한 가르침 (27-40절)

이성의 시대를 살면서 과학 기술에 익숙한 우리는 물질세계를 중시하는 현세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내세와 부활을 믿으려 하지 않는 사두개인은 이런 우리의 표상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의문시하는 현대인들에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1>어리석은 질문 – 사두개인들은 율법을 따라 계대 혼인법(신25:5-10)을 시행했을 때 부활시 누구의 아내가 되는지 묻는다. 타락한 인간은 말씀을 왜곡하고 비틀어서라도 자기 논리를 정당화하려 끊임없이 시도한다. 성경을 욕마의 도구로 삼지 않기 위해서 겸손한 순종의 자세가 요청된다.

2>권세 있는 대답 – 난처해 할 것을 기대하던 이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하지 못한 어리석은 질문임을 지적하신다. 부활 때는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될 것을 예고하신다. 우리는 주께서 보여주신 새 질서의 모습을 생각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과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3>지혜로운 재해석 – 주께서는 가시떨기 가운데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소개하셨던 일을 상기시키며 이 말씀이 부활을 전제한 말씀임을 지적하신다. 사후의 상태에 대해 다 알 수 없지만 부활은 확실한 약속이다. 소망을 가지고 의연하고 담대하게 세상을 살아가자.

4>다른 차원의 사고를 하라 – 현세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 사두개인들은 내세나 부활을 믿지 않았기에 조롱하듯 주님께 질문하였다. 난처해하며 얼버무릴 것으로 기대하던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질문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헤아리지 못한 어리석은 것임을 지적하신다. 부활 때는 생육과 번성의 방식으로 살지 않고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되어 천사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며, 죽지 않은 몸을 가질 것을 예고하셨다(눅20:36).

부활한 세상은 우리의 세상과 다르다.

고전15:37-38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천국은 낯선 곳은 아니다.

히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천국에서라도 이루어진다.

히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단12:2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사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눅14: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주님의 날에는 이 땅에서의 관계, 성별이나 언어적 공간적 장벽 등이 사라지고, 부활의 자녀로서 충만한 사귐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사후의 상태에 대해서는 다 알 수 없지만 그리스도의 재림과 인류의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역사가 완성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오늘날에도 유물론적 사고를 가진 이들은 부활을 부정하고 조롱한다.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가치만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새 창조를 목격한 우리는 소망을 뚜렷이 하며 이런 세상을 거슬러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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