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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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81104 천국으로 가는 길 (누가복음 16장 14절 – 31절) 조회수 : 734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8-11-02

인생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죽음이 아니라 천국이다. 죽음이라는 문턱을 넘어 천국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턱을 넘는다고 다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다. 문턱을 넘기 전의 인생을 살 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

Ⅰ. 스스로 옳은가, 하나님 앞에 옳은가?(14-18절)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비웃었다(14절). 그러나 주님은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높임 받는 자는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15절). 바리새인들은 경건운동의 부속물로 권력과 재물을 얻고 탐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는 자만에 빠졌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옳다 하심을 인정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주님은 이어서 세례요한을 언급하셨다. 요한 이전은 율법과 선지자 시대였지만, 이후에는 복음이 전해져 누구나 천국에 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율법이 폐지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엄위함과 영존성을 강조하시기 위해 이혼 문제를 일례로 드셨다(18절). 지금은 누구나 천국에 침노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그 나라는 자기 기준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기준으로 갈 수 있다.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리새인들보다 더 의롭게 살아야한다. 바리새인보다 나아야한다는 것은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차원을 말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계명을 문자로 해석을 했다. 그러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떠나있었다. 바리새인들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목적은 자신이 얼마나 경건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인지를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게 살기 위해서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계명이 즐거움이 되고, 계명을 지켰을 때 누리는 기쁨을 맛보며 사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추구할 때에만 계명대로 살 수 있다.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Ⅱ.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19-26절)

한 부자가 명품 옷을 입고 연일 잔치 속에 살아갔다(19절). 반면에 그 집 대문에 버려진 거지 나사로는 부잣집 음식 쓰레기로 허기를 채우는 비참한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사후 세계에서 그들의 위치는 반전되었다(22-23절).

우리는 지상에서 좀 더 부요하고 화려하게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천국에서는 아무 소용없다. 세상과 사랑하지 말고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이 세상과 저 천국에서 이루어질 반전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셨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마20:16),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마10:39), 웃는 사람은 울게 되고 우는 사람은 웃게 된다(눅6:21). 하늘나라에서는 반전이 상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러한 반전은 없는 사람에게는 큰 위로가 되고 가진 사람에게는 큰 경고가 된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반전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렇다. 많은 것을 가졌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이 많으면 그것이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이웃에 대해 무관심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많은 부자라고 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부자처럼 반전을 맛볼 필요가 없다. 삭개오라는 부자는 반전을 면했다. 동족에게 과다한 세금을 부과하여 돈을 번 부자였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강제로 빼앗은 것은 네 배로 갚겠다고 말하여, 예수님으로부터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는 축복의 말씀을 들었다(눅19:8-9). 이런 반전을 맛보지 않으려면 가진 것으로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섬기면 된다.

부자는 나사로의 손끝에 물을 찍어서 달라고 간청하였다(24절).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것이 지상과 천상의 반전이라고 설명하였다(25절). 물론 부자가 부자라서 천국에 못 간 것이 아니라 물질에 탐닉하느라 영원을 대비하지 않아서 못 간 것이다. 천국과 지옥, 낙원과 음부는 넘을 수 없는 간격이다(26절).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하나님을 붙들어야 한다.

Ⅲ. 구원에 이르는 길(27-31절)

부자는 나사로를 집에 보내어 형제들이 이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27-28절). 하지만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 즉 성경 말씀을 들으라고 하였다(29절). 말씀을 듣지 않는 자는 죽은 자의 부활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31절).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내 눈앞에 나타나면 믿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나타나도 못 믿는다. 그의 교만이 그를 넘어뜨릴 뿐이다. 실제로 나사로가 부활했을 때 바리새인들은 그를 예수님과 함께 제거하려고 했다(요11장). 기적, 체험, 설득으로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이미 성경에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담겨있다(딤후3:16). 하나님의 기적을 보여 달라는 사람에게는 이미 예수님이 오셨음을 말해 주어야 한다. 예수님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기 때문이다(요14:9). 이미 천국 문을 열어주는 모든 열쇠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우리 가운데 기적을 보여주든지 좀 큰 증거를 보여주면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살피시기 바란다. 자신이 증거가 없어서 못 믿는가, 믿고 싶지 않아서 안 믿는가? 이미 증거는 충분하다. 부활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이 있다. 구약에서 그리스도에 관해 예언된 것이 예수님을 통하여 다 이루어졌다는 놀라운 증거가 있다. 또 예수님의 실재를 체험하면서 사는 수많은 성도들이 주위에 있다. 이미 증거는 충분하다. 더 이상 큰 증거나 더 큰 기적을 기다리지 말고 단 한 번 주어지는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시기를 바란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세상에서는 무명할지라도 천국에 내 이름이 있어야 한다. 비유 속의 부자는 천국에 그 이름이 없다. 세상에서는 온갖 호사를 누렸지만 그의 인생은 하나님 앞에 무의미했다. 그러나 나사로의 이름은 하나님이 아셨다. 이것이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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