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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먹고 사는 법, 늦어도 배우자! 조회수 : 260
  작성자 : 박재준 작성일 : 2025-05-20

먹고 사는 법, 늦어도 배우자!

오래 사는 법 아니? 골골하지 않고 벽에 X칠 하지 않으면서 말일세.”우리 시대 최대의 화제(話題)가 아닐까.

나는 몇몇 모임에서 총무를 맡다보니 자주 안부와 알림 내용을 보낼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적절한 첫마디 인사구절 찾는 데 애를 먹을 때가 많다. 이럴 때 자주 내뱉는 첫마디는 숨 잘 쉬고 있나?”.

그렇다! 숨만 잘 쉬면 만사 오케이. 장수의 비결 아닌가. 이제 남은 것은 잘 먹는 일이다. 그래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좀 오래된 얘기지만 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경험담 한 토막을 소개한다.

소싯적 미국. 캐나다 쪽으로 기술전수도 받을 겸 여행갈 기회가 많았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반, 회사의 명인지라 걷어치우고 되돌아 올수도 없었다. 체류기간 내내 먹는 문제로 사투(死鬪)를 벌여야 했다. 매일의 메뉴는 빵, 베이컨, 감자칩, , 과일통조림 등 거의 인스턴트식품 일색이었다. 나 같은 된장 체질에는 통 맞지를 않아 반 고문수준의 일상이 이어졌다. 캐나다 공항에 도착한 때부터 연수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매 끼니와의 처절한 싸움은 결국 한()으로 남았다.

직장 내 점심 메뉴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억지로라도 양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다. 하지만 아침저녁과 주말은 어쩌나가 참선의 화두(話頭)같이 자리 잡았다.

귀국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한식요리를 학원에서 배우리라 다짐했지만 번번이 공수표로 돌아갔다. 원자력설비 관리라는 막중한 책임이 조금의 여유도 허락지 않았고 일과 후 학원시간표와의 괴리도 한 요인이었다.

그럭저럭 세월은 흘러 199812월 중순, 한도 못 푼 채 정년을 맞았다. 밤새 기와집 몇 채를 짓고 부수면서 새벽을 맞았다. 그러다가 음식나라라는 요리학원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3개월간의 강행군이 끝난 19994월 하순. 산업인력공단에서 내주는 한식조리사국가자격증을 손에 거머쥐었다. 기쁘기 한량없었다. 다음은 당시 분위기가 묻어있는 나의 일기장 일부다.

발표 날 아침 휴대폰으로 흘러나온 동료 학원생의 목소리가 반장님! 축하합니다였다. 순간 지나간 3개월간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는 않았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기쁜 소식을 식구들에게 알리려고 전화를 돌렸다. 딸은 벌써 알고 있었다. 비록 말은 없어도 온 가족이 이심전심으로 합격을 기원했음이 분명했다.

학원생들의 인적구성은 20대 초반부터 50대 후반까지 폭이 넓었다. ‘IMF구조조정이란 칼날 앞에 엎드린 소시민들이 실업수당 몇 푼으로 연명하는 느낌이 들어 측은하기까지 했다. 교과과정은 하루4시간, 5, 3개월간, 이론과 실기로 편성되었다. 이론과목은 공중보건학, 식품위생학, 영양학, 식품학, 조리과학, 원가계산 및 식품위생법 등이었고, 실기과목은 대부분 궁중요리가 근간인 53개 개별조리였다. 엄청난 개수에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조리실습 중 겪은 에피소드 한편 남긴다. 가장 애타고, 힘들었던 것은 고명 만들기특히 계란으로 지단부치기가 아닌가 싶다.

어느 오후, 텅 빈 조리대 앞에 섰다. 머리띠를 두른 체·. 달걀 2(60)을 노른자, 흰자를 분리하고, 후라이팬, 뒤집개와 결투를 벌였다. 초보운전자의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서서히 탄력이 붙어 급기야는 뒤집개 없이도 지단이 공중재비를 돌면서 넙죽이 엎드려지니, 가히 달인의 경지를 맛보았다. 시건방을 좀 떨면 눈 감고도 척척.

나중에 보니 쓰레기통에 실습의 흔적인 습작품이 한가득 찼고 비로소 야호”!하고 쾌재를 불렀다.

시험당일에는 각자 위생복과 조리도구를 지참했고, 요리마다 정해진 재료를 활용해 교과서대로 정해진 시간에 완성하고 작품을 제출해야 했다. 우리 학원에서는 37명이 응시해 9명이 합격, 24%의 합격률을 기록했다. 결과를 보니 부아가 치밀었다. 꼭 낙방을 시켜야만 직성이 풀리는 억하심의 발로는 아니었을까.

원자력을 주무르던 자가 마침내 앞치마 두른 칼잡이가 되었다는 소문이 원자력업계에 파다하게 펴져 우습게도 불가사의한 전설 하나를 더 남긴 셈이 되었다. 지금은 비록 장롱면허에 불과하지만 언제든 혼자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니 안심이 되기도 한다.

이 참에 하고 싶은 제안이 있다. 남녀불문하고 중·고교 교과과정에 기본 요리코스를 추가해 글로벌시대, 백세시대를 맞는 작금에 본의 아니게 홀로되는 노인이 많을진대 기본적인 먹고사는 노하우 프로그램을 개발해 실시토록 하면 어떨까?

풍요 속에 빈곤이라고, 넘쳐나는 식재료를 두고도 요리방법을 몰라 굶거나, 인스턴트 식품류에만 기대어 영양실조를 자초하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2021.07.10. 세일 박 재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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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2

박재준2025.05.20 12:24
보시는 바와같이 4,5년 전 울산제일일보 '인생한담' 칼럼에 실린 수필이며
한으로만 남을뻔한 응어리를 틀어낸 경험담이요.
재미로 보시길~~~.
정창욱2025.05.31 23:12
늦은 나이에 힘겹게 한식요리사 자격을 취득 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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