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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사랑이신 하나님, 공평하신 하나님 | 조회수 : 1058 |
작성자 : 장혜남 | 작성일 : 2012-11-26 |
회개란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주일 설교말씀을 듣고 지나간 저의 세월들이 생각났습니다.열번 스무번 생각해도 저는 그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내그 그때 나의 삶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면 지금 쯤 어디서 무엇을 하며 누구를 위해 살고 있을까?아찔합니다.
나는 어른들이 시켜서 하나님이란 이름을 불렀지만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아버지를 부를수도, 불러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보육원에 보내졌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3살쯤인것 같습니다,어렸을때엔 그냥 사는 곳이 거기라는 것쯤으로 알고 지냈습니다,밥주면 먹고 노는 시간에 놀고 잠자야 되는 시간에 자고...불평도 불편도 불만도 없었었습니다,그러나 국민학교에 들어가고 부터는 보육원 밖의 사람들을 견제하게 되었고 자연히 내가 처해있는 상황에 불만도 하게 되었고 또 세상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업신여김에 대하여 원망도 했습니다.제가 살고 있던 보육원은 선명회가 후원하는 기독교 시설이었습니다.일정한 시간을 정해 수요일과 주일은 강당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그럴때마다 내 마음에는 원망을 했습니다 ("하나님 공평! 예수님 사랑!" 좋아하시네!)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나.다른 애들처럼 엄마,아빠랑 같이 살게 해야지! 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애들처럼 삥당친것도 없고 도둑질 한 것도 없는데...나는 그런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인정할수가 없었습니다.
17살이 될때까지 돈이란걸 한번도 손에 쥐어보지도 못한채 중학교를 졸업하는 것과 동시에 달랑 옷가지몇개를 사들고 허허벌판과도 같은 세상속으로 내 보내졌습니다.막막했지만 나의 삶이니 그러려니 하고 직물공장에 취직을 하였습니다.하나님은 아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12시간 막교대를 하며 열심히 나의 삶이 부유해지기를 기대하였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습니다.혼자라는 생각을 할때마다 뭔가가 나를 누르며 압박하는것 같았습니다.결혼! 가정! 자녀!......십원한장도 마음대로 쓸수가 없었습니다, 나 위해 수학여행은 고사하고 친구들과 여행한번 다녀본적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쓸수가 없었습니다 왜! 나 자신 밖에는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강박감으로 힘이 들었습니다.그 때 부터인것 같습니다 "교회가야 하는데..교회가야하는데.."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가 생각할때 주님을 생각하기보다는 지옥가지 않기 위애 예수믿어야 되는 지옥신앙만, 간음 신앙만, 도둑질하면 지옥간다는 지옥신앙이 나를 압박하였던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뿐 실천하지는 않았습니다.그렇게 시간은 흐렀고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기 위하여 남편의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시부모님은 그 당시 사이비 종교에 빠져있었습니다, 거기다 대고 "저는 고아고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는데 너무도 쉽게 괜찮다고 같이 사는 것이 아니니까 염려안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막상 결혼하고 나니 나의 의지로 할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울면 운다고, 말하면 말대꾸 한다고, 말안하면 말안한다고,세상에서 처음당하는 상황이 과관이 아니었습니다 , 매일 술마시고 깨부수고,되지도 않는 거짓말로 괴롭히고,뒷 배경이 없는 내가 싫어서라며...삶이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교회가는 것은 생각할수도 없을 만큼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를 비유하며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일년 365일 중에 366일을 술마시는 사람이고!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해야 할는지? 뭘 해야하는지? 아무것도 볼랐습니다, 가르쳐 주는곳도, 볼수 있는곳도 없었으니까요. 전쟁아닌 전쟁같은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며 떠오르는 것은 보육원에서 편안하게 예배드리며 놀던 그때였습니다,
그러다 첫 딸을 낳았습니다, 열달 내내 입덧으로 먹지도 못하고 또 처해있는 상황을 생각하며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우는 것 밖에는 없었던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의 자라감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내가 인정치 않던 하나님밖에는 아무도 찾을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선영이 성격이 모나지 않게 해주세요"제가 처음 기도했던 기도입니다.
남편의 그런 행동들이 점점 나를 세상과 담을 쌓게 하고 또 사람들과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첫아이가 걸어 다닐때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웃으?며 거리를 다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 "저!사람들은 어쩌면 저렇게 웃을수 있을까?정말 팍팍한 생활이었습니다.
2년뒤 아들을 낳았습니다, 유문이 막혀 젖을 먹을수 없어 병원에 입원하여있는아들이 전신마취중에도 남편은 병원에 술병을 가지고 퇴근하였던 것을 딸은 아직도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달 반 뒤 아들은 "선천성 시신경없다"라는 진단과 평생 보지못하고 살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집므로 퇴원했습니다, 내가 염려했던것 처럼 남편은 역시 "너가 고아라서 너가 예수쟁이라서 재수없으니 이런 일이 생겼다며"또 시작했습니다.정말 악착같이,더 부지런하게, 더 열심히 살았지만 왜 이럴까?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설명절이 지나고 보름이 되었을때 남편은 자기랑 옥상에 올라가 달에게 절하며 빌자고 했습니다,내가 교회는 자가지 못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으로 기도하고 있으니 혼자 가서 하라고 했는데 그 말이 또 화를 불러일으켰답니다. 하루 하루 가면서 남편의 포악함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처럼 엄마 없는 애들 만들지 않기로 하고 죽기 살기로 참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우리 딸은 똑똑하고 정상아니까 아빠가 알아서 하겠지! 그러나 장애를 가진 아들을 부끄러워하고 고아 아내를 부끄러워하니 우리 둘이는 죽자!라고.자는 아들을 업고 한겨울 깜깜한 장생포 밤바다에 들어갔습니다,물이 아이를 없은 포대기까지 찰 무렵"예수 믿는 사람은 자살하면 지옥간다"는말이 내 귀를 왕왕거렸습니다 얼른 나왔답니다, 지옥가기는 싫었거든요.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까지 성경공부 같은것은 한번도 받아본적이 없었기에 또한 영적으로 무지했기에 나의 처지에 적합한 방벅으로 나를 이끌어 주신것 같았습니다.그 후에도 두번이나 그런일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그 소리에 끌려 지금까지 살아 있있답니다. 아들은 백일이 지나자 조금씩 시력이 회복되어 정상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까지도 남편이 무서워서 교회 간다는 것은 시도할 생각을 못했었습니다,
1986년 가정생활은 최악이었습니다,그동안은 혼자 생각하고,혼자 말하고, 혼자 기도했지만 처음으로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이혼도 자살도 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저는 이제 더 이상은 견딜수 없으니 그만 하겠습니다 아예 예수믿지 않은 사람치고 이제 이혼 합니다.더는 안 참습니다"라고. 집안은 난장판이 되고 악을 쓰느라 지쳐서 있었습니다,
그 순간! 기적같은 일이 생겼습니다,누군가가 확성기를 내 귀에 대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이 모든 것는 내 생각이고 너를 위한 나의 계획이다 "라고-아무것도 알수 없었지만 나도 모르는 눈물이 났습니다,내 안에서는 한번도 생각할수조차 없었던 생각으로 나의 모든 삶의 여정들이 해석되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아닌 나같은 사람을 어느 구석에 놓아둔들 누가 알겠는가!그러나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이런 계획들을 세워서 보육원을 통해 하나님 자녀가 되게 하셨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날 위해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의 그 마음이 가슴에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회개가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수 있었답니다, 세상에 없는 아버지가 제게도 생겼습니다, 가슴이 벅차고 세상을 살아낼 자신이 생겼습니다,
남편? 상황은 여전 했지만 이제는 제가 담대해 졌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계시기에 귀머거처럼 벙어리처럼 바보처럼 묵묵히 살아도 당당할수 있었습니다,내 안에서 자꾸만 소리가 들렸습니다 "혜남아! 뭔가를 결단해봐!"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남편:길어야 백년의 삶, 그러나 내가 아무리 잘 해줘도 순순히 교회다시 가라고 하지는 않을거야! (본인의 자존심이 상하니까)
예수님:영원하신 분! 좋게 하시는 분! 날 위해 분명 좋계하실거야!
저는 삶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먼저 딸을 언양교회 유치부에 보냈습니다, 역시 남편안에서 조종하는 사단의 계략은 매일 술마시고, 깨부수고, 피를 흘리고...지옥같은 전쟁이었지만 이제는 견딜수 있었슴니다, 내 안에 소망이 있었어니까, 6개월이 지나니 조금 조용해졌습니다 이제는 나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고 싶었고 또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전에는 제 기질이 남편과 맞섰지만 이제는 주님이 내 안에 계시므로 내가 아니라 주님의 마음으로 견디게 되었습니다,
1997년 말 남편은 1년6개월의 투병생활을 마쳤습니다, 병상에서 세례를 받고 천국 갔습니다, 중학교 3학년 딸, 중학교 1학년 아들! 저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자녀양육? 먹고사는것? 공부시키는것? 제가 어찌 알수 있겠습니까? 저는 또 한번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자녀를 위하여 ,또 나를 위하여 주님께 붙어있기로-공장에 가서 돈벌면 예배시간 이 부족할것같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 없을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애들 데리고 사느라 고생하셨죠? 그러나 저는 한번도 고생이라고 생각하며 산 적이 없었던것 같습니다,오히려 감사합니다, 저에게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알게 하도록 훈련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고아의 마음을, 짝믿음 가정의 어려움을 ,장애우부모의 아픔을,과부의 마음을 ,암투병하는 사람들의 아픔을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자녀들이 기도부탁하면 기도하고 그러면 주님께서 내가 아는게 없으니까 다른 사람을 만나게 해주시고,또 기도하면 이끌어줄 사람들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제가 돈벌어 아들을 오대양 육대주로 보낼수 있었을까?그러나 우리 아들은 오대양 육대주를 다 돌며 공부를 마칠수 있었답니다, 가고자 하는 일이나 해야할 일이 있으면 항상 구역식구들에게 기도부탁을 했왔답니다, 다 고백할수 없을 만큼 많은 은혜와 응답이 있었지만 다 증거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공평하신 하나님!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포기하지 마시고 삶의 방향을 한번 바꾸어봅시다.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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