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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노태권, 이지영 목자목녀를 소개합니다. 간증문 첨부 | 조회수 : 1333 |
작성자 : 손영호목사 | 작성일 : 2012-05-26 |
지난 주일 2부 예배시에 문광현 목장에서 노태권 목장으로 분가식이 있었습니다.
노태권 목자께서 간증하시면서 울컥하시는 장면을 보면서 저도 같이 울었었습니다. 그 은혜로운 간증은 간증동영상을 통해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노태권 집사님께서는 사실 군대에서 저의 선임이셨습니다. 93년도로 기억되는데, 당시 노태권 집사님은 10월, 저는 12월 기수였습니다. 그래서 같은 이등병, 일등병 시절을 보내면서 저에게는 참 의지가 되는 선임이셨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다니다 온 것을 아시고, 잘 챙겨주셨습니다.
그런데 잊을수 없는 한 기억이 있습니다. 소대 전체 집합이 있었는데, 챙겼어야 했던 준비물이 있었는데, 제가 가지고 오지 않았던 겁니다. 분대장들이 챙기지 못한 사람들은 나오라고 하며 다그쳤는데, 제가 나가려고 하는 순간! 노태권 집사님께서 자신의 것을 저에게 주시고는 대신 앞에 나가서 기합을 받으셨고, 맞기도 하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남을 위해 희생하는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울산시민교회에 부임해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 주 집사님께 그 때 그 기억을 떠 올리며 문자를 드렸는데, 집사님은 그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셨습니다. 역시 은혜를 입은 사람은 잊지 못하고, 은혜를 베푼 사람은 쉽게 잊는가 봅니다.
좋은 신앙의 모범을 일찍이 청년의 시절에 보여주시고, 신앙의 감동을 느끼게 해 주신 노태권 집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밥이라도 한번 사야되겠네요...
<간증문>
안녕하십니까?
문광현 목장에서 분가하는 노태권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가정의 4남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불교신자여서 초파일에 가끔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비빔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간혹 절에 가셔서 주무시고 오시는 경우도 있었지만 자식들에게 특정 종교를 믿어야 한다고 강요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저 역시 특별히 종교에 관심이 없었고 유년시절에는 아무 생각 없이 마냥 개구쟁이로 지냈습니다.
평범하게 유년시절을 보내고 고1 때 친한 친구를 따라 교회를 처음 가보게 되었습니다. 강릉시민교회라는 작은 교회였는데 젊은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친절하게 맞아주시고 또래 친구들도 있어서 어색하지만 싫지는 않았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기독교라는 종교와 예수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고1당시에 가치관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기 시작하면서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라는 물음이 저를 고민스럽게 만들던 시기였던지라 자연스레 종교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배 시간도 즐거웠고 성경도 나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믿기 힘든 성경의 내용들도 많이 있었기에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저 친구가 좋고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아서 열심히 교회를 오고가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일 년 쯤 지난 고2 여름수련회 기간에 나를 택하시고 아들 삼아주신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믿어지고 인간을 사랑하여 직접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시고 대신 죄를 짊어지셨음이 믿어지고 죽으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도 나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있음을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셔서 아브라함과 같이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셔서 직접 하나님과 대면하여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음이 너무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부모님을 만났지만 나와 내 자녀들, 그 후손들은 내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알고 그 복을 누리는 은혜를 누릴 수 있음을 꿈꾸며 감사했습니다. 그 때 이후로 저는 주일 오전부터 저녁까지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으며 친구들에게도 내가 만난 예수님을 알리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릴 지경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교회 일이라면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노방전도를 나가서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찬양하며 내가 만난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이 울산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저는 자연스럽게 울산에 소재한 대학을 다니게 되었고, 강릉에서 그랬던 것처럼 큰 교회보다는 작은 교회를 소개 받아 주일학교교사, 성가대, 청년회 회장으로 섬기며 대학생활을 보내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권사님으로 섬기시는 분의 딸이며 당시에는 뺀질거리며 그닥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지 않았던 제 아내 이지영집사를 만나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나서 큰 교회에서 좀 더 체계적인 신앙훈련도 받고 싶었던 우리 부부는 울산시민교회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개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봉사를 많이 하였으니 이제부터는 큰 교회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누리며 신앙훈련을 받으며 좀 편하게 교회를 다니고자 하는 속셈도 있었습니다. 그 즈음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던 저는 넘쳐나는 원생들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확장이전하게 되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단과학원도 오픈하게 되면서 저는 더욱 일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학원이 성장하고 제가 책임져야할 직원들이 점점 많아질수록 저는 점점 기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주일 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선데이크리스챤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그래도 구역모임이며 순모임이며 여집사님들과의 교제가 있었던 반면 저는 교회에서 아는 사람도 거의 없이 투명 인간처럼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반면 학원은 더욱 성장하여 한 번 더 확장을 하여야 할 시점이 되자 저는 무리를 해가며 많은 대출을 안고 200평 상가를 매입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하고 이전을 한 학원에서는 생각처럼 운영이 잘되지 않았습니다. 원생이 늘지 않는 정체기에서 시간이 지나자 눈에 드러날 정도로 원생이 줄기 시작하였습니다. 경영이 악화되면서 대출이자를 감당하기도 어려운 상태가 되었고 결국 상가와 아파트를 모두 경매로 잃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우상처럼 섬기던 세상의 물질을 빼앗아 가신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사람들 앞에서는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가는 것처럼 말하였지만 당시의 저는 젊은 나이에 남들보다 빠른 성공으로 교만하여 질대로 교만하여서 모든 결정을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였음을 고백합니다. 고작 ‘하나님! 이번에 저는 이런 일을 하고 싶습니다. 축복해 주실 거죠? 좋은 결과를 기대합니다.’식의 기도를 하였음을 고백합니다. 어떤 일을 결정하기 전에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결정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제 결정에 맞추어서 필요를 공급해주시기를 떼쓰듯이 구하는 미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제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어리석은 자였는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숫양의 기름보다 듣는 것을 더 기뻐하고 제사보다 순종을 더 기뻐하신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제 아내는 아이들 옷 한 벌 사주지 못하며 힘들게 가정을 꾸려 나가야 했지만 제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 무척 애를 썼습니다. 저는 그런 아내에게 미안하고 또 실패한 제 인생에 화가 나서 자신을 학대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더욱 싫었습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부르짖고 싶었지만 기도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 침체기에 빠져 있던 저에게 가정교회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장 예배에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빠지기 시작하였고 그나마 주일 연합목장예배에는 아내와 아이들을 태우고 와야 하기 때문에 빠질 수가 없었기에 형식적으로는 예배를 참석하였습니다. 남들은 위기가 닥칠 때 하나님께 더욱 나아가게 된다고 하는데 나는 왜 하나님께 부르짖고 싶고 하소연도 하고 싶은데 왜 기도가 나오지 않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하나님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이 저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제가 기도하여도 하나님은 듣지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이 저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를 당신의 도구로 쓰시고자 부르시고 계셨습니다. 2011년 이강배 목자 신앙간증부흥회 이후 문광현목자님과 김혜진목녀님이 저희 부부에게 예비목자로 세움을 받으시라고 권면을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 상황을 아시는 분이 그런 말씀을 하니 황당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분은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를 사랑하셔서 쓰시고자 하신다는 기도 응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무런 답변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 하나님께서는 저를 조금씩 회복시키셨습니다. 2011년 12월 1일 온가족새벽기도회 시간에 목사님께서 히브리서 4:14-16 말씀으로 설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내가 기도할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기만 하면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리라는 사실을 왜 그동안 몰랐을까요? 제가 기도하지 못하여도 눈물로 우리 가정의 형편을 가슴 아파하며 기도하셨던 수많은 시민교회 천사들을 왜 몰랐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땅에 있는 많은 천사들을 통하여 우리 가정의 필요를 채우고 계셨음을 왜 몰랐을까요? 울산시민교회 안에는 많은 천사들이 계셨습니다. 제가 난처하지 않도록 배려하며, 오히려 부족하여서 죄송하다며 베풀어주는 많은 사랑의 빚을 받았습니다. 통장의 잔고가 0을 가리킬 때에도 쌀이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감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황은 달라진 것이 전혀 없지만 저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목자로 헌신하기로 작정하였고 새벽기도도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목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제 앞에서 걸어가셨던 선배 목자님들을 닮아서 그대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잘했다고 칭찬하실 줄 믿습니다. 양희권장로님, 안병모목자님, 문광현목자님, 고재용목자님, 강호진목자님! 이 다섯 분들의 선배 목자님들을 옆에서 지켜보았고 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니 저도 그대로 제가 받은 사랑과 기도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 저는 세상의 많은 고통 중에서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한 고통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 당장은 그 고통이 가장 큰 고통이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그러나 제게는 제 목숨보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두 딸이 있으니 감사하고 기쁩니다. 제가 겪고 있는 고통이 가족의 질병이나 가정의 불화가 아님이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제가 목자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눈물의 기도로 지지해주신 이종관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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