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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나와 남을 이해하기위해~3탄 | 조회수 : 954 |
작성자 : 김찬미 | 작성일 : 2011-08-05 |
조울증 환자의 두 번 째 목장 도전기
4년 전 성령이 임하여 한 태풍 같은 open을 한 후 아내와의 별거가 시작이 되었고,
그러면서 지난 5년 동안 몰랐던 조울증이란 병이 정체를 들어 내면서 저의 병은 중증으로 급속히 악화 되기 시작 하였습니다.
병원을 정리하고 혼자서 다닌 지난 6개월 동안의 첫 번 째 목장 도전기에서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혼자서 견디는 훈련이였습니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있을 즘에 아내에게서 목자가 되었다는 문자가 와서
아내와 아이들과의 만남을 다시 시작 하였습니다.
아내와 서로 아픈 곳을 건더리는 대화는 안 할려고 서로 노력하였고
일 주일에 한 번 오는 아빠의 모습에 아이들의 얼굴도 많이 밣아 졌습니다.
첫 목장에서 훈련을 잘 견뎌서, 목장에서의 사람들과의 만남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고 판단이 되었으므로,
아내가 있는 집의 목장으로 돌아가야 겠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만 4년만에 우리 집에서 목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 4년 만에 하는 목장에 아내가 감격스럽기도 하고 지난 일들이 주마등 같이 지나갔을 던 지라
"기쁘고 감회가 새롭다"는 뜻의 말을 하였는 데,
그 말 중에 지난 4년 간의 전쟁을 떠 올리는 두 개의 단어가 저의 뇌리에 꽂혔고,
아내 편에 서면서 "나의 죄를 다시 보라"는 듯한 말투가 섞인 분위기와
그에 동조하여 무심코 마치 촉수를 쏘고 들어 가듯이 말을 툭던지는 여집사 분들의
말에
갑자기 심기가 불편하였지만
그 날은 아내에게 "지난 일을 목장에서 당분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하고 양평으로 와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새벽 4시경 갑자기 눈이 떠 지면서
나의 지난 날의 고통을 생각나게 하는 두 단어가 생각 나면서
나를 죄인으로 몰고 가는 듯한 목장 분위기와
무심코 촉수 처럼 던진 여집사들의 말투가
뇌에 깊게 꽂히면서 나의 가슴을 짓눌러 숨을 쉬기가 힘들어 눈이 떠 졌습니다.
그 단어와 상황과 촉수같은 말들이 뇌에 꽂혀
머리는 터 질듯이 아프고, 숨쉬기가 힘들고 온 몸에 힘이 쭉 빠졌습니다.
수면제를 먹어도 불면에 시달려, 평소 두,세 배의 양의 수면제를 먹어야했고
그나마도 잠시 잠을 자도 악몽에 시달려 새벽에 잠이 깨서 뒤척이는
한 마디로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아니라,
죽기 직전의 고통이였습니다.
요양한 지 8개월동안 마음의 안정과 지속적인 약물 투여로 어느 정도 회복된
세로토닌의 생성기능이 한 방에 바닥이 나 버렸습니다.
목장에 다니면서 갈등도 많았지만 잘 견뎌서 성취감으로 인한 mood가 up되어
많이 올라 간 만큼
down되는 속도도 빠르고 깊이도 깊어서
지난 9년 동안 경험했던 고통보다 강도가 심했습니다.
그 전에도 밧데리가 완전 방전이 되어 바닥까지 down되는 경우가
3달 까지도 고통이 이어 진 적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 번에는 그 강도가 지금껏 느껴본 적없는 심한 고통이였습니다.
살기 위해 겨우 끼니만 때우고 인공 호흡기를 단 식물 인간처럼 살았습니다.
그 전 처럼 석 달도 버텼는 데, 이번에도 버티면 또 밧데리가 충전이 되겠지하고
한 달을 버텼습니다.
그러나 한 달이 되자,그전에 경험해 본적이 없는 강한 강도의 고통에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응급실로 가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9년 동안 스스히 진행되면서 온갖 증세들이 하나 씩 나타나면서
어느 정도 까지가 한계인 지 잘 알고 있었고, 위험 sign도 경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위험 sign을 몸으로 느끼고 더 이상 버티 다가는 돌이 킬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응급실로 가서 입원해도, 약의 용량을 늘리고 관찰하는 것이기에,
그 전에 약의 용량을 늘리면서,부작용이 심해서 일시적으로 용량을 줄이면서
save해 놓았던 약이 있어,
많은 용량을 한 꺼번에 먹어서, 부작용으로 응급실로 가나,
고통을 못이겨 그냥 응급실로 가나 매 한가지이므로
정신과 의사의 지시 없이 그냥 갖고 있던 약으로 기존 먹던 약에서 1/4용량을 올려서 먹었습니다.
그러자 에너지가 조금씩 올라 오기 시작 했습니다.
약이 독해서 3개월 동안 스스히 올려야 하는 용량을 한 꺼 번에 올린 것입니다.
진료 날이 되어 정신과 의사에게 그 동안의 얘기를 하자
"그 동안 증세가 안정이 되어 있었는 데,갑자기 많이 악화 되었네요"하면서
지난 2주가 내가 올려 먹었던 양보다 두 배로 많은
6개월 동안 스스히 올릴 용량을 한 꺼 번에 올려서 약을 7주치를 처방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그 전과 같은 심한 부작용은 없으나 하루 종일 약에 취해서
앉으면 잠만 자는 부작용을 있지만 증세는 많이 호전이 되었습니다.
이 번에 그 동안 경험 해 보지 못한 강한 강도의 고통을 겪으면서
첫 번 째 느낀 점은
극심한 고통이 지속이 되자,원시뇌를 통제하는 전두엽의 이성의 기능이 감소하여
원시뇌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자,
원시 뇌의 부정적 자아는 내게 이런 말을 속삭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 나려면, 너를 고통스럽게 원인 제공을 한 목장을 끝내고,
아내와 다시 만나면 지난 4년 간의 고통스런 전쟁이 또 시작이 되니 아내와의
만남도 끊으라"
마치 우울증의 정점에서 원시뇌가
"이 고통에서 벗어날려면 자살하는 수밖에 없다"고 미숙한 결론을 내리는 것과
같은 판단을 내립니다.
그 속삭임에 넘어가
목자와 아내에게"목장과 교회는 더 이상 나가지 않겠다"고 문자를 보냅니다.
그런데 원시뇌의 달콤한 유혹에 의한 결정에도 고통은 변화가 없었습니다.
일 전에 우울증에 대한 글에서
"증세가 악화 되었을 때는 이혼과 퇴직과 같은 중요한 결정은 하지말고
증세가 안정 될 때 까지 미뤄야 한다"고 얘기 했었는 데,
나는 이성의 판단력이 떨어 진 상태에서,
원시뇌의 미숙한 판단에 넘어가 그 원칙을 어긴 것이였습니다.
두 번 째 느낀 점은
우울증 환자는 뇌에 꽂히는 불쾌한 상황을 맞이 했거나, 말을 들었을 때는,
일정한 틀에 갖혀서 분노를 느끼고 폭발을 하거나
아니고 참아야 할 상황이라면 억지로 참기 위해서
남은 에너지 마저 완전 소모시켜, 밧데리가 완전 방전이 되고
그러면서 mood가 바닥을 치는
두 가지의 자동 반응 시스템에 갖혀 있습니다.
정상인들은 뇌에 꽂히는 상황이나 말에도
"내 생각이 틀리고 그 사람 말이 옳은 지도 몰라"
"사람이 다르니 내 생각과 다를 수가 있지"
"상대가 좋은 뜻으로 얘기 했는 데, 내가 잘 못 받아 들이는 것이겠지"
"상대가 나를 잘 몰라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이 겠지"
"평소 말투가 촉수 처럼 툭 내뱉는 안 좋은 버릇이 있으므로 그런거지
날 무시 해서 그런 말은 아니겠지"
"인품이 없어서 그런 것이니 못들은 것으로 하자"
"앞으로 안만나면 그만이니 잊어버리자"
같은 다양한 수용 방법으로 뇌에 꽂인 불쾌한 기억을
뇌의 저편으로 묻어버리거나 아니면 흘려 버리거나 하는
뇌의 방어 메카니즘이 뇌를 방어 하여 뇌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는 다양한 수용 방법의 뇌의 방어 메카니즘이 무너진 상태로
분노와 자학으로만 통하는 자동 반응 시스템의 일정한 틀에서만 받아 들이고
그에 고통 받습니다.
뇌에 꽂히는 상황이나 말에도 두 번 째 목장도전에서는 정상인들과 같이
다양하게 수용하여 흘려 버리고,묻어 버리고,맺어버려
뇌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는 훈련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습니다
세 번 째 느낀 점은
인간의 뇌는 인체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일을 하는 곳 입니다.
신체에 말초신경을 통한 명령,보고 듣고 느끼고의 감각, 생각 등의 일을 하므로
1.5kg의 무게로 인체에서 2%의 무게이지만,
뇌 혈류랑은 전체의 20%에 해당이 됩니다.
뇌의 에너지가 가장 많이 소모되는 일은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입니다.
저 같은 만성 우울증 환자들은 뇌가 아프므로 뇌가 활동 즉 생각을 안 할려고
하기에 기억력의 저하가 오기도 합니다.
우리같은 환자들에게 자기 죄를 보라 던지, 날 마다 QT를 해야 한다 던지하는
무거운 요구는
아픈 뇌를 억지로 활동하게 하는 것이기에 바람직하지 못한 처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빠지지 않고 주일과 목장 예배 잘 나오는 것에 감사해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목장에 나오라고 격려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주일과 목장 예배 잘 보다 보면 자연 자기 죄가 더 잘 보일 것이요
시간이 지나 증세가 완화 되면 자연적으로 QT도 하겠지요
네 번 째 느낀 점은
목장 예배는 나눔이지 토론의 장이 아닙니다.
나눔이 보편 타당한 생각이 아닌 소수 의견이라도, 잘 경청해줘야지
자기 생각과 틀리다고 촉수 처럼 말을 툭툭 내뱉어서는 안된다는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이 글의 시작 때 부터.
일반인들의 아무 생각없이 한 말과 행동에 우울증 환자는 죽기 직전의 고통을
혼자서 겪을 수 있으니 말조심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었습니다.
부부사이의 일은 미묘한 경우가 많아서 하나님과 부부만이 아는 경우가 많아서,
개입시에는 신중해야 하고,
말도 함부로 툭툭 뱉어서는 안된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첫 번 째 이유는 우울증 환자와 그 가족의 고통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였고,
두 번 째 이유는 일반인들의 우울증 환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보자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한 번의 주제로 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자료 정리 1시간, 노트에 문장 만들기 2시간, 노트북에 옮기면서 1차교정 하면서
3시간, 자유나눔에 올리면서 2차,3차 교저하는 데 4시간
한 주제로 글을 올리는 데 10시간 이상이 걸립니다.
인간은 본래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이해 할려고 하지도 않고
이해도도 떨어 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일반인들의 이해도가 기대치 만큼이 아니라는 것에 실망도 했습니다.
아무튼 그 동안의 저의 노력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5주간의 죽기 직전의 고통을 겪은 것은
뇌에 꽂히게 하는 그 상황과 툭 내뱉는 상대의 말은 2차적인 문제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나의 뇌가 아프기 때문이지,
남탓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우울증 환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내가 환자로서의 바램인 뿐이지
그 상대의 의무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우울증이라는 질환이 질병과 고통이 남의 눈에 보이지 않고
혼자서 외로이 겪어야 한다는 특성이 있으므로
사람들 속에 섞여서 살아 갈려면
우울증 환자들은 환자로서 상대방에게 배려와 이해를 바라지 말고
스스로 약물치료와 심리적 환경적치료 그 외의 치료를 열심히 해서
그 상대에게 맞추어서 살아 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지난 6개월 간 혼자 다닌 목장 생활은 일반인들 사이에 섞여서 잘 견디는 훈련이였습니다.
이 번의 두번 째 목장 도전기에서는
상대의 아무 생각 없는 말과 행동에 바로 뇌에 꽂혀서 분노와 자학으로 이어지는 자동반응 시스템의 회로를 차단하고
정상인들 처럼 수용의 다양성을 뇌에서 익혀
흘려 버리거나, 묻어버리거나,맺어 버리는 훈련을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아내가 있는 부부 목장에 다시 도전합니다.
지금은 약물의 조금한 부작용으로 취해서 앉으면 자는 데,
지금의 용량은 maximum의 반 가까이 밖에 안되는데,
앞으로 약물을 스스히 계속 올리면서, 어떠한 부작용이 생길지도,
몸을 못가누는 상황이 생겨서 목장에 어쩔 수 없이 못나가는 상황이 생길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중은 생각지 말고, 목장 가는 그 날 조그마한 힘만 남아 있다면 목장에 참석하는 것으로 그 날 그 날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우울증 환자와 그 가족에게 도움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이니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우울증에 대한 나머지 글을 마무리 해 볼 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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