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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왜 하나님은 우리를 목장으로 모으시는가? 조회수 : 1349
  작성자 : 최수혁목사 작성일 : 2010-08-26

목사님께서 나눔터에 올려서 도움이 되도록 하셨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수요예배 설교원고를 올립니다.

 

목장모임에 도움이 되시길..

 

 

 

롬 12:4-5 왜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로 두시는가?

 

어떤 사람에게 교회 공동체에 참여하고 봉사를 좀 하라고 했다. 그는 혼자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만족하고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을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왜 그런가 물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교회에서는 거룩한 척 살지만 세상에서 그들의 삶은 세상과 꼭 같아서, 그런 이중적인 모습이 상처가 되고 그것을 견디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상처받고 싶지 않고 관여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꼭 공동체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잘 믿으면 되지 않는가 라고 반문을 했다.

어떤 분들은 목장에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 때문에 목장에 참여하는 것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어떤 분들은 더 극단적으로 꼭 교회로 모여야 하는가라고 말한다. 인터넷을 통해 설교를 듣고, 혼자서 신앙생활을 해도 되지 않는가 하고 생각한다. 저도 대학생 시절에 그런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한 몸으로 세우셨다고 한다. 몸에 여러 지체가 있다. 지체는 몸에서 분리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되는 한 몸이다. 왜? 꼭 모여야 하는가? 왜 하필 골치 아프게 하나님은 우리를 모으시는가? 오늘같이 개인주의화된 사회에서 서로 모인다는 것이 불편하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다. 특히 마음이 맞지 않는 가시같은 사람이 있을 경우는 더욱 그렇다. 지금 우리 사회는 혼자 시간을 보내기에 너무나 좋은 세상이다. TV도 있고, 인터넷도 있고 게임도 있다.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는 진실된 나눔의 갈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또한 여전히 자신을 숨기고 싶은 이중적인 갈망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을 믿게 되어도 이러한 경향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왜 모여야 하는지, 왜 공동체라는 불편한 것 같은 옷을 입어야 하는지 여전히 의문한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으시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1.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이다.

해외로 공부하러 나간 학생들이 간간히 들려주는 소식을 들으면,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삶을 나누는 신앙적 모임이 없다는 것이 자신을 영적으로 고갈시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몸으로 비유하신 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은 성장이다.

5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영적으로 이미 한 몸,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다. 그래서 이 몸을 떠나서는 성장도 없을뿐더러 열매도 없고 죽는다. 만일 손이 발과 부딪히는 것이 싫어서 몸을 떠난다고 하면 손은 성장하지 못한다. 마땅히 자라야할 만큼 자라지 못하고 마땅히 한 몸에서 해야할 많은 사역의 열매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요한복음에 포도나무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요15:4-5]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성경의 또 다른 부분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물론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는 것을 말하지만,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교회의 공동체 안에 깊은 유기적 관계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예수께 붙어 있는다는 것은 목장이라는 공동체 안에 유기적으로 깊이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가 내안에 내가 그 안에 있지 않으면, 즉, 목장 공동체 안에 유기적 연합이 없으면, 과실을 맺지 못한다. 영적 성장이 없다. 열매를 맺어야 할 시기가 지났지만 열매가 없는 인생이 된다. 사역적 열매, 인격적 열매가 없다.

그리스도인으로 얼마나 정상적이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가는 교회에서 성도간의 교제에 얼마나 깊이 유기적으로 연합되어 있는가에 달렸다. 교회를 다니지만, 세상 공동체에서 나누는 교제가 더 많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데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들 안에는 성도 간에 교통하는 참 생명되신 그리스도의 교통하심은 없기 때문이다. 세상 가치, 세상 문화로 세상풍속에 휩쓸려 다니는 영적 어린아이가 될 것이다. 혼자 신앙생활 하겠다고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 몸이고 서로 지체라고 했다. 몸의 어느 부분도 다른 부분으로부터 떨어져서는 살 수도 없고, 온전한 기능을 발휘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다른 성경에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셨다.

[행2:46]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으로 모이는 것은 예배와 같은 큰 공동체로 모이는 것이다.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모이는 공동체는 목장이다. 이 두 가지 모임에 힘을 쓰라고 하셨다.

[히10:25]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영적 열매를 맺기 위해, 여기에는 사역적 열매, 인격적 열매를 모두 포함한다. 다른 말로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모여서 다른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목장모임이라는 것이 영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기를 바란다.

목사님이 세계로 교회 손현보 목사님 책을 나눠주셨다. 책을 다 읽어보았다.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휴가를 맞아 그 교회를 탐방해보았다. 정말 교회가 될 수 없는 위치에 교회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방이 공장지대였다. 예배가 끝나고 탐방오신 분 있으면 일어나라고 하셨다. 그래서 일어났더니 옆에 앉으신 구역이 섬겨주시라고 하더라. 그 교회는 잔디밭이 교회 앞에 있었고, 교회 출입문 앞의 마당이 상당히 넓었다. 그날은 비가 왔는데, 잔디밭에 앉지 못하니깐 그 마당에 자리를 펴고, 구역식구들이 모여서 주일 점심을 나누었다. 교회는 밥과 불고기를 준비했고, 구역은 과일이나 혹은 전을 부치기도 하면서 오순도순 식사를 나누었다. 처음 대했지만 상당히 마음이 열렸다. 그때 깨달은 것이 가정교회 원리와 같구나 하는 것이었다. 성장이 일어난다고 하는 교회를 보면, 가정교회 원리가 적용되는 교회이다. 가정교회의 중요한 핵심 가치 중에 하나가 목장이다. 물론, 여기서 숫적 성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혼이 구원받고, 제자가 되고, 사역적, 인격적 열매를 맺어가는 총체적 성장이 목장이 이라는 공동체에 유기적으로 연합될 때 일어나더라는 사실이다.

큰 교회는 예배만 하고 가면 개인주의를 충분히 지킬 수 있다. 요즘, 대형교회들 군중속에 숨을 수 있기 때문에 선호한다는 말도 하지 않는가? 그러나 영적 성장은 없다. 사역적 열매도 그렇다.

여러 지체들과 다양한 모임을 통해 만나라. 그리고 초청도 하라. 교회의 여러 사역 부서에도 나가서 섬기라. 자기보다 나이 적은 사람도 만나보고, 자기보다 연령이 높은 사람도 만나보라. 섬기기도 하고 섬김을 받기도 하라. 그러한 교제를 나누는 것을 통해 내가 섬기기도 하고 내가 섬김을 받기도 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초기 신앙공동체는 이런 교제가 활발했다. 서로 모여서 음식을 나누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함께 나누고 했다. 또 함께 문제를 놓고 기도했고, 성경말씀을 나누고 깨달은 것을 함께 나누면서 채워졌다.

 

2. 영적 은사가 성장하기 위해서이다.

어떤 분들은 영적 은사라고 하면 너무 신비하게 보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마귀가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은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섬기라고 주시는 선물이다.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사용해야 한다. 우리가 은사로 섬길 때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다.

[벧전4:10]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한 가지 이상의 성령의 은사를 주셨다. 왜? 서로를 섬기라고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섬기라고 하시면서 너희 힘으로 섬기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능력을 주시고 섬기라고 하신다. 은사를 주시고 섬기라고 하신다. 각자에게 작든 크든 은사가 다 주어져 있다.

그런데 그 은사가 거의 개발되어 있지 않다. 섬길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탁월한 은사를 주셨다고 할지라도 섬길 공동체가 없다면 성장하지 않는다. 여러분이 공동체를 잘 섬기면 섬길수록 하나님께서 더 큰 은사를 주신다. 또 다른 은사를 더하신다. 더 깊이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특권이다.

목장은 우리가 안전하게 은사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다. 좀 실수해도 용납하고 받아줄 수 있는 가족공동체이다. 중보기도하다가 엉뚱한 말해도 넘어가 줄 수 있는 곳이 목장이다. 그래서 목장으로 모일 때 영적 은사가 발휘되고 성장하는 것이다.

 

3. 원수의 공격을 대적하여 성장하기 위해서이다.

가정을 하나로 예를 들어보자. 가정의 온전한 성장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계획하신 연합된 서로 사랑하는 화목한 공동체일 것이다. 그러나 가정만큼 상처가 많이 생산되는 곳도 없을 것이다. 왜 그런가? 사탄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화목한 가정이 돼지 않도록 태초의 가정을 공격을 했다.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뜻은 공동체가 연합하여 견고히 서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의 공동체가 한 마음으로 연합하여 견고히 서는 것을 원치 않는다. 성도 개개인이 견고히 서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공격을 한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 우리는 공격의 대상이 된다. 싸움은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군대와 군대의 싸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열을 떠나서는 승리할 수 없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여기서 '서다'라는 말은 군사용어이다. 당시 로마제국의 군대가 세계 최강이었다. 그들의 전술은 대열을 지키고 자기 자리를 사수하는 것이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자기 자리를 사수하도록 훈련을 했다고 한다. 만일 두려워서 자신의 대열을 이탈하면 그 전술은 무너지는 것이다. 대열을 이탈하는 것,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몸을 떠나는 것은 백전백패이다.

사탄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고, 은사를 사용하고, 사역적 열매를 맺는 것을 미워한다. 증오한다. 그래서, 우리를 영적 어린아이 상태로 붙잡아두고, 무능력하게 만들기 위해 분열의 영, 개인주의의 영, 경쟁의 영, 시기의 영 등의 무기로 공격하고 있다.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혼자서 군대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가? 우리도 군대로 사워야 한다. 함께 기도해주는 목장이라는 공동체에 유기적으로 연합되어 있어야 승리한다. 뿐만 아니라 나의 이웃을 위해 나의 자리를 사수하여 기도해야 한다. 중보의 무기를 들고 싸워주어야 한다. 그래야 함께 세워져 간다.

 

4. 인격이 성장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영적 성장, 영적 성장한다. 그것은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만 되는 것도 아니다. 신앙서적을 탐독하고, 용한 집회를 통해 용한 목사님께 임파테이션을 받고, 신학을 공부한다고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신학을 열심히 공부한 신학박사 중에는 영적으로 어린 사람도 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성령의 열매가 나온다. 사랑, 온유, 절제, 오래참음 등등. 성경에 보면 가장 큰 계명이 나온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십계명의 반은 이웃을 향한 계명이다. 요한의 서신에 보면 새 계명이 나온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다. 바울의 고린도전서 13장에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나온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것이다. 한 마디로 성화이다. 어디서 이러한 영적 성장이 일어나는가? 신학을 공부하면? 책을 읽으면? 용한 집회를 찾아다니면? 아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발휘되고 성장하는 것이다. 자신을 오픈할 수 있는 작은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서 길러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은 공동체 안에는 나와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아직 완전히 성화되지 못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모두 약점을 가지고 있고, 계속해서 처리되어야 할 죄들도 있다. 우리는 거룩한 공동체이지만, 여전히 거룩해야할 부분을 가지고 있다. 그곳이 목장이다.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이 길러진다. 상처받음으로 내 안에 감정이 들끓어 오르고, 그러면서 평안할 때는 감추어져 있던 나의 모난 성품이 들어난다. 신앙 공동체를 통해서 나의 이러한 모난 부분을 발견하고 다듬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성화되어가는 것이다.

[벧전 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석수들이 집을 지을 때 돌이 잘 맞도록 돌을 다듬는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다듬으신다. 공동체로 모이면 개성들이 다 다양하기 때문에 갈등이 일어난다. 갈등없는 공동체는 없다. 특히, 신앙공동체는 더 하다. 그래서 자신의 성질대로 안 된다고 공동체를 뛰쳐나가고 옮기고 하는 것은 영적 어린아이 상태로 남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특히, 견디기 힘든 사람이 있다고 떠나는 것은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광야로 돌아서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은 나를 갈고 다듬은 하나님의 도구이다.

실제적인 이야기를 하자.

1) 특히, 반복되는 패턴에 주의하라. 누군가 때문에 갈등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또 그런 문제로 누군가와 갈등이 일어난다면, 하나님께서 사인을 주시는 것이다. 어떤 분은 이 부서에 가서도 동일한 문제를 일으키고, 다른 부서에 가서도 동일한 문제를 일으킨다. 또 어떤 분은 이 목장, 저 목장 옮겨보지만 동일한 문제를 일으킨다. 또 어떤 사람은 누구나와 동일한 문제를 일으킨다. 그렇다면, 그 부분은 내가 갈아져야 할 모난 부분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직시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용기가 필요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먼저는 자신을 죽이고 그 부분을 직시하여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분을 힘들지만, 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신다. 기도하면서 그 부분을 갈아보라.

2) 영적 주도권을 잡으라. 말려들면 안 된다. 스티브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에 첫 번째 습관이 있다. 그 첫 번째의 핵심적 내용은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키라는 것이다. 환경, 다른 사람들을 내 뜻대로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말려든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놓고 2-3시간 이야기한다고 그 사람이 변화되는가? 목장이 이랬으면 좋겠다고 2-3시간 이야기한다고 변화되는가? 그 부분은 하나님께 맡기라. 그러나 변화시킬 수 있는 영역이 있다. 바로 나 자신은 스스로 변화를 추구하고 바꿀 수 있다. 내 생각을 바꿀 수 있고, 내 말을 바꿀 수 있고, 자신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니 자신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더라는 것이다. 이것을 영적으로 말한다면 영적 주도권을 쥐는 사람이다.

3) 대비하고 만나라. 영적 안목을 가지고 보라. 누가 우리를 공격하는가? 그 사람 안에 상처가 있을 것이다. 다음 목장할 때도 반드시 내 마음에 상처를 줄 것이다. 그래서, 대비를 하고 만나라. 그 사람의 상처를 통해 나를 공격하는 사탄의 세력을 예수 이름을 묶는다고 선포하라. 그리고 기도로 대비를 하고 모임에 가라. 그래야 영적 주도권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 목자님들도 목원 때문에 마음 상해하시는 분들이 있다. 대비하라.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라고 미리 생각하라. 그리고 그것을 내가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기회로 삼으라.

4) 예수님과 함께 만나라.

달라스 월라드의 역작,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책에 보면 ‘예수의 제자로 사는 사람들 안에는 예수의 임재와 행동이 빠진 관계란 존재할 수 없다. 일대일의 관계란 없다.’고 말한다. 모든 관계는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수님과 함께 만나는 것이다. 이 의미를 놓치기 쉽다. 너무 주님없이 일대일로 만나려고 한다. 직접적으로 접촉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실패하고 상처받고 실망한다. 이 말은 이웃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그리스도께 이웃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기도를 통하여 만나라. 그럴 때 변화가 일어난다.

 

결론

한 번 왔다가 가는 인생, 주님 손에 마음껏 붙들려서 쓰임받고 싶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사명대로 살다 가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듬으실 때 주님 손에 맡겨드려야 한다. 공동체 안에서 관계적 성품이 다루어지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쓰임받을 수 없다. 하나님은 유능한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유용한 사람을 사용하신다. 아무리 유능해도 손에 잡히지 않으면 쓰실 수가 없다.

1년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성장했는가? 하나님은 한 가지 부분을 다루신다. 내가 온유가 부족하다고 하면, 그 부분에 갈등이 일어나게 하실 것이다. 내가 오래참음이 부족하다면 그 부분에 갈등이 일어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다루시는 손길에 맡겨드리자. 나를 사용하여주시기를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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