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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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00503 죽음의 문턱에서(시편 88편 1 – 18절) 조회수 : 907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20-05-02

시편 88편은 오랫동안 아팠고 친구도 없으며, 죽음을 앞둔 사람이 기도한 개인 애가이다. 시편 기자는 거의 하나님을 포기했지만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Ⅰ.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1-2절)

이 침울한 시편은 내 구원의 하나님에게 호소하며 시작한다.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는 그분이 주신 은혜와 사랑에 기쁨과 감격의 노래는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죄악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는 좌절과 고통을 경험하며 슬퍼할 수밖에 없다. 성도는 슬픔의 날에 하나님을 향해 애가를 불러야 한다. 구원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멀리 있다. 그의 영혼은 완전히 절망하지는 않았지만 슬픔 가운데서 있다.

Ⅱ. 무릇 나의 영혼에는 재난이 가득하며(3-5절)

그의 불평은 욥을 회상케 한다. 간단히 말해서 욥처럼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다. 구약의 상당한 시대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내세라는 개념은 없었으며, 죽음이 끝이라고 믿었다. 죽은 자는 하나님의 보호 너머에 있듯이, 하나님이 그를 잊을 것이다.

Ⅲ. 하나님이 내 삶을 망쳤도다(6-12절)

시편 기자는 자신의 현재 상태를 한탄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너무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하나님을 비난한다. 하나님은 그를 죽음 가까이 몰아넣은 자이다. 친구들은 고통 가운데 위로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친구들이 혐오감을 느끼도록 할 뿐이다.

10-12절의 연속된 질문은 하나님이 행동하도록 자극하려고 거의 비웃기까지 한다. 질문은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는 믿음, 즉 내세는 없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Ⅳ.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13-14절)

시편 기자가 여기서 처음 하나님에게 도움을 구한 것은 아니다. 그는 매일 아침 새롭게 시작한다. 그의 불타는 질문은 ‘어찌하여’이다. 어찌하여 하나님은 시편 기자에게서 자신을 숨겼는가? 마치 하나님은 그를 거부하는 듯 느껴지며, 아마도 하나님이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편 기자는 그 이유에 대해 실마리조차 알지 못한다. 다시 한번 시편들은 하나님에게 적나라하게 정직할 것을 권장한다.

Ⅴ. 어둠이 내 가장 친한 친구이다(15-18절)

고난이 시편 기자에게 새로운 경험은 아니다. 자신의 생애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절망 가운데 있었다. 그 원인이 하나님의 진노라고 여기지만, 여전히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왜 자신이 진노의 대상인지 질문한다.

그러나 주님의 응답은 없었다(14절). 여전히 자신의 기도에 응답이 없으신 하나님께, 왜 주님께서 그를 버리시며 자신에게 얼굴을 숨기시는지를 물으며 탄식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셨기 때문에 지금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 하나님의 공포가 홍수같이 그를 둘러싸고 삼켜버렸다. 어떤 시편도 이 시편보다 더 침울한 어조로 끝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욥과 마찬가지로 친구들에게 시편 기자의 고난이 그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때문에 친구들이 그를 버린 듯하다. 이유가 무엇이든지 어둠 이외에는 전혀 친구가 없다.

Ⅵ. 고난 중에 부르는 찬송

고시편 88편 기자가 21세기에 살고 있어도 이처럼 ‘비참한’ 시를 썼을까?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부활의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사도 바울은 주를 위해서 일을 많이 하라고 권면하였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주의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요6: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요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욥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사단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사단의 공격을 받아 자녀와 재물과 건강을 다 잃는 처지에 이르면서 싸우고 있었다. 싸움의 핵심은 하나님을 저주하고 원망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욥은 이 싸움에서 승리했고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이전에 소유했던 것을 두 배로 다 받았다.

욥1: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욥42: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의심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는 했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래서 믿음의 승리를 한 것이다.

욥1: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믿음의 표현이어야 한다.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봉사 활동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거기에 활동이 따를 수도 있고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나병과 같은 중한 병에 걸려서 사람과 격리된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도 욥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싸울 수 있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 욥이 한 것처럼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죄를 짓지 않고,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 때문에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소망을 포기하지 않고, 역경 가운데에서 감사하며,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인내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주의 일을 할 수 있다. 역경 가운데에서도 순경 가운데에서도 주의 일을 할 수 있다. 건강한 생활 가운데에서도 연약한 모습 가운데에서도, 하물며 시편 88편 기자처럼 불치병에 걸려서도 주의 일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주의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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