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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0922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소서 (에베소서 3장 14절 – 21절) 조회수 : 894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9-09-20

바울은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불러주셨다고 말한 후(3:1-13)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감옥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즉 ‘기도’를 ‘편지’를 통해서 보내고 있다. 그는 성도들을 위해서 세 가지를 기도하였다.

Ⅰ.  성령으로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소서

2장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영적으로 살아난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을 때에는 죽은 자였는데 그리스도 안에서는 살아났다. 성령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성도들의 눈을 밝혀 영적 진리를 깨닫게 할 뿐 아니라 성도들의 속사람을 강건케 하는 일을 한다. 성령으로 속사람이 강건해지고 그리스도가 마음에 거주하시면 에베소 성도들은 사랑 안에 뿌리를 내리고 견고해질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구원의 근거이며 삶의 확실한 토대다.

Ⅱ.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을 구했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사랑을 성도들이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특별히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 높이와 깊이를 깨닫도록 구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체험만이 신앙생활의 터전이요 동력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다.

롬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1>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 나무가 그 생명을 유지하려면 뿌리가 흙에 박혀 있어야 한다. 같은 이치에서 기독교인들의 믿음도 그리스도의 사랑의 터 위에 뿌리를 박고 있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해 나갈 수 없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한 신앙이 바르게도 자라고 크게도 자란다.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인격은 그가 체험한 하나님의 사랑만큼 밖에는 자라나지 못한다.

롬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2>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 고전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는 신비체험이다.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신비다.

고전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롬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가 있는 유일한 길은 성령체험이다.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성령님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죄 사함을 받은 사람에게만 임하신다.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우리는 어디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일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이다. 우리는 거기서만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거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 못하면 다른 어디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없다. 성육신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셨다.

3>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에게 오는 것은 새 사람으로 지으심을 받는 중생의 체험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시시각각으로 죄 사함을 받으면서 시시각각으로 새로 지음을 받는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 감격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 사랑이 기독교 윤리의 동기와 동력이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1에 “그러므로”를 외치기 전에는 “오직 믿음” 뿐이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다음에는 “그러므로” 다. 그때까지는 오직 믿음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러므로” 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과 기독교 윤리가 접촉되지 않으면 타락이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신앙생활은 이제부터다. 언제나 교리 다음에 오는 것은 윤리다. 교리는 윤리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4>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9)

그 너비와 – 롬2:10-11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길이와 - 렘31: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요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높이와 - 전9:1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 삼상2:6-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요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Ⅲ. 하나님의 충만한 데까지 충만하게 하소서

마지막으로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수준까지 충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하나님의 완전한 수준까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게 해달라고 구하는 것이다(4:13). 참 담대한 기도다. 우리의 영적 성숙의 목표는 눈에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아야 한다(5:1-2).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한다(4:15).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고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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