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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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0609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 (누가복음 22장 1절 – 13절) 조회수 : 886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9-06-07

누가 복음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렀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예수님의 생애의 정점이며 동시에 완성이다. 예수님께서는 만민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해 죽으셨고 믿은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부활하셨다. 속죄의 죽음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말하고 부활은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한다.

Ⅰ. 예수를 죽일 방도를 찾는 자들

예수님을 죽이려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살해 음모는 집요했고, 백성들의 반응을 고려하여 방책을 궁리할 만큼 주도면밀했다. 예수를 제거하고 기득권만 유지할 수 있다면 시기(유월절)와 방법(살해)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알았고 자신들의 악의가 적발되었는데도(20:13-14). 악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백성을 두려워했을 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이 유지하고 싶었던 것은 제사장의 지위와 그것이 주는 특권이었을 뿐 하나님의 인정이 아니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백성들과의 원만한 관계, 그를 통해 로마의 인정을 받는 것이 자신들의 안전과 영화를 유지시켜 준다고 여겼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대로 살았다. 그러나 백성들이 예수님을 열광적으로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체포하는 일은 난관에 부딪히고 있었다.
때마침 가룟 유다가 나타나서 악인들의 흉계에 손을 빌려주게 되었다. 언제나 좋은 일은 잘되지 않고 악한 일은 너무 잘 되어서 걱정이다.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은 내버려두시고 악인들의 손만 들어주시는가? 이런 질문은 옛날부터 되풀이 되어온 안타까운 부르짖음이다.

잠24:19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시13:1-3 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최후의 답변은 예수님 자신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 생활과 죽음에서 구해내심을 기념하는 날이다. 생명을 구해야 할 이들이 죽음을 도모하는 것은 신앙의 배반이다. 욕망이 가득하면 본질을 망각한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 속한 자는 서로 사랑하며 그 안에 생명이 있다”하였고, “마귀에게 속한 자는 형제를 미워하며 살인하는 자라“ 하였다. 사랑으로서 생명을 살리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다.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자인가, 죽음의 세계를 조성하는 자인가?

Ⅱ. 예수를 팔아넘길 궁리를 하는 제자 배반을 사랑하는 자

사탄의 하수인으로 불의한 종교권력과 결탁하여 예수를 죽이는 데 일조한 사람은 다름 아닌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였다. 돈에 대한 집착과 탐욕이 그의 눈과 마음을 어둡게 했고 악한 영의 역사를 허용했다.

3.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하나님께서 일꾼을 찾으시는 것같이 마귀도 자기의 일꾼을 찾아서 사명을 주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영을 주시는 것같이 마귀도 자기의 자녀들에게 영을 준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나 후자의 경우나 사람 편에서 마음의 문을 열 때만 성령도 받고 악령도 받게 되는 것이다. 가룟 유다는 마귀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의 말보다 사탄의 말을 더 믿었다. 그는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상의하지 않고, 예수를 제거하려는 자들과 상의하였다.
매일 깨어 근신하여 기도하지 않으면 언제든 우리도 믿고 따르던 주님을 배반하고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유다는 그 길로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을 찾아가서 예수를 넘겨줄 대책을 숙의하게 된다. 사탄에 지배된 유다는 예수를 넘겨줄 방도를 의논하며 돈을 거래한다. 종교 지도자들의 질투심과 증오, 한 제자의 야망과 환멸, 기만과 배신이 만나 살해를 도모한다. 어둠의 일은 죽음을 만들어 낸다. 생명을 위해 빛 가운데 행하고, 뜨거운 사랑으로 살자.

Ⅲ. 유월절 어린양이 될 준비를 하는 예수

출애굽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유월절을 앞두고,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 죽일 일을 도모했지만, 예수님은 ‘유월절 양’ 으로서 자기 죽음을 준비하셨다.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나귀를 준비하실 때처럼, 유월절 만찬 자리를 준비하게 하셨다. 예수님의 죽음은 단지 종교지도자들의 간교한 계략이나 유다의 배신의 결과가 아니라 예수님이 손수 주도하시고 이루신 일임을 보여준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고 죽은 생명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또한 베드로와 요한, 무명의 사람(집주인)의 순전한 순종과 아낌없는 헌신을 통해 유월절 만찬이 준비된다. 불의와 탐욕에 빠져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는 유다(6절)와 달리 언제든지 주의 말씀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이다. 유월절 양을 잡을 날이 이르렀다. 주께서는 제자 둘을 보내 유월절을 예비하게 하신다. 유월절은 죽음으로 생명을 낳으신 날이다. 어린 양의 죽음으로 자유와 생명을 얻는 우리는 생명 세상을 이루기 위해 주님 뒤를 따라야 한다. 
죽음을 도모하는 자와 죽음을 예비하는 이, 생명을 파는 자와 희생하는 이가 가는 길은 다르다. 그 삶의 열매와 운명도 갈린다.우리는 죽음으로 생명을 낳으신 주님의 제자다.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생명을 살리고 풍성케 하기 위한 우리의 길은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로 세우는 것이다. 그 방법은 예수님처럼 섬김의 종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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