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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예정해 두신 희년이 올까요 조회수 : 252
  작성자 : 구신회 작성일 : 2026-04-05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정말 있을까요

먼저 내 삶을 반추 해 보아야 합니다
19세기 분이셨던 할아버지께서
1924년경
처음 예수님을 영접하심으로
믿음의 가정이 된 저희 집은
6.25 전쟁 폐허 위에
한국 교회에 새로운 부흥의 물결이
일렁이던 1955년
4박 5일은 기본이었던
당시의 부흥회 집회 시절
함양사는 할아버지 구집사와
거창사는 외할아버지 강집사가
거창 창남교회 부흥회에서 만나
우리 부모님의 결혼이 주선되고
이듬해 56년 부모님이 창남교회에서
결혼을 하게 됩니다
57년 첫딸 을 시작으로
2~3년 주기로 저희 6남매를 낳으셨지요

62년 태생인 저는
외가에서 자랐고
외할아버지 집은
외조부님이 지으셨던 교회와
마당을 같이 쓰고 있어
교회당이 쪼꼬미 내 놀이터 이기도 했습니다
마당건너편엔 사택도 같이 있었는데
서울 말씨를 맛깔나게 쓰는
조사님에겐 저보다 한살 어린
한나 라는 계집애도 있었지요

반주께미 놀이도 한나랑 .
예배시간에 장난도 한나랑.
대여섯 살 시절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다시 본가로 돌아와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 178 번지
177번지 상백교회랑 삽짝을 같이 쓰는
집에서 할아버지가 치던 새벽종 소리를
들으며.국민학교 유년시절을 자랐습니다

6학년때 아버지가 부산으로 이사 하셔서
큰고모님이 다니시던
초량 삼일교회에 잠시 다니다가
서대신동 백ㅇㅇ목사님의 부산서부교회에
부모님과 함께 다니게 됩니다

백ㅇㅇ목사님은
어머니 주일학교 교사였었고
외할아버지 절친 이셔서
부모님을 일찍 여의셨던 어머니의
아버지 같은 존재셨지요

76년도에 2층이었던 교회당을 4층으로
증축하는 공사를 하였는데
다니시던 직장도 내려 놓으시고
아버지는 증축공사장 팀장으로 일하셨지요
당시에는 전문 건설회사가 아닌
교회에서 직접 공사를 진행 했었고
당연히 공사 총괄도 백ㅇㅇ목사님이
하였었지요
공사가 5개월쯤 진행했을 11월 초
아침 10시경
어머니도 현장 인부들 식사 도우미로
1층 마당에서 조리 준비를 하던
어머니 바로 앞으로 4층에서 일 하시던
아버지가 떨어 지셨고
곧바로 가까이 있었던 아미동 부산대병원
응급실로 옮기셨지만
오후 2시경 숨지셨지요

그날 아침 교회로 일가시던 아버지와
중학교 1학년이었던 저는
초량6동 산 241번지 집에서
같이 나왔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살갑게 지내지 않던
부자지간이었는데
그날은 내 가방을 들어 주시며
"시내야!
조심해 댕기라 차조심 하고"
그말이 끝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고후 백목사님은 교회에 사고를
함구하고
어머니를 3층 목양실로 혼자 불러
이런일이 교회에 알려지면
복음에 전혀 도움이 안되니
가만히 있으면 교회에서 다 알아서
처리해 주겠다 약속 했답니다

사고후 다음날 새벽같이 달려오신 큰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들의 대책회의때
어머니는 백목사님께 일임하고
아무 소리도 말아 달라고
친지 분들에게 목숨걸고 애원 하셨고
할수 없이 친지분들은
교회에서 파견한 부목사님이 주관하는
장례식을 치른 후 돌아들 가셨지요
장례식 내내 백목사님은 장례식 어디서도
볼수는 없었습니다
11월5일 장례를 마치고 지쳐 쓰러진
어머니를
백목사님이 밤에 구역장집사님을 보내
어머니를 불러 가셨고
다른 대책없이
보상금도 한푼없이
매달 5만원씩 10년간 교회에서
생활비를 주는 조건으로 사고를
종결 지으셨지요
당시 원화 가치로 5만원이면 쌀 1가마니를
넘기는 때였지만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있던 시절이라
5년이 지나니 쌀 반가니 값이 아니 되었지요
그때 서부교회는 주일 출석교인이
3천명을 넘기는 부산에서 제일 큰 교회쯤
되었습니다

저보다 다섯살 많았던 큰누나는
어머니 일처리에 강력하게 반발하였고
백목사를 직접 만나 항의도 했었지요
혼자 찾아간 19살 큰 누나를 막아서던
부목사들이
완력으로 도저히 감당이 아니 될 만큼
강력한 소란에
목양실 문이 열려 졌고
부목사 두분과 담임이셨던 백목사께서
어머니의 도장이 찍힌
10년간 매달 5만원 이란 합의서를
내 보이며 어떤 요구도 들어 주지 않아
빈손으로 돌아 나오며
"백ㅇㅇ목사 지옥에나 떨어져라!"
큰소리로 욕을 퍼부으며 교회를 떠나
며칠 후 17살 이었던 작은 누나와
집을 나갔습니다
집을 떠나기 전날 밤 늦께 까지
누나 둘이랑 어머니는
백 목사를 사이에 두고
공격과 변호로 싸웠습니다
가방을 챙기는 누나들을
왠지
적극적으로 막지는 않았던 어머니 였지요

작은 누나는 30년 전쯤 믿지 않던 자형과
함께 교회에 다시 나왔지만
한결같이
저런 백ㅇㅇ가 가는 천국이라면
지옥을 택할거라고
큰 누나는 악담을 했습니다

교회를 떠난 누나는
여전히 가족모임때는 예배에 참석해 주었고
10년 전 쯤 가족예배때 기도를 부탁했었는데
끝내 거절 했습니다

그 누나가
8년전 어머니 마지막 세상살이 6개월을
애증愛憎의 보살핌으로
어머니를 천국으로 보내 드릴때
어머니 상태가 좋으실 땐
간간히 교회에 함께 모시고
나가기도 했었지만
여태 교회랑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천국 가신 4월 첫주말
저희 가족은 매년 부모님 산소에서
형제들 모두가 모입니다
어제 4월 4일 토요일
억수 같이 비가 퍼붓던 아침에도
큰누나가 단톡방에 야외 부모님산소 모임을
강행하자 소란을 떨었고
너네들 비오믄 천국 안갈꺼냐며
나무라는 통에
10시 모임을 11시로 한시간 늦추어
약속 시간을 잡았습니다
정원이 35명을 넘기는데
조금 결석하고 26명이 모였습니다

비가 부슬거리는 부모님묘지에서
받쳐든 우산을 잠시 접고 기념촬영을
서둘러 마치고
내려오는 길 옆에 철책으로 둘러쳐진
거대한 돌무덤인
백ㅇㅇ목사 묘지를 쳐다보며
"저게 맞지
저렇게 돌로 눈질러 놔야
부활해도 예수님 만나러 나오지 않을 수 있잖아"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데
우산을 받쳐든 누나의 얄궂은 미소에
빗물인지 눈물인지 살짝 비쳤습니다

이어 실내 모임장소로 옮겨
가족모임을 진행했는데
총대를 잡은 큰누나가
"비가 이리 와도 좋네
실내서 모이니 더 좋다야"

시작을 빨리 하자며 기도를 재촉하고
막내동생 구장로가 식사 기도를
하고 각자 분담해온 만찬을 즐길때
꼬마 쪼꼬미 본휘가 6촌 누나랑
예쁜짓을 해 대는데
왕고모인 큰 누나가 돌이질 하는
본휘를 억지로 끌어 안고
"이 녀석이 이리 자라낼 줄 어찌 알았노
얼매나 감사하노"
울음을 터트려 실내가 숙연해 지기도 했습니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 큰애 자원이가
우리집에 애기가 생겼어요
이제 한달 조금지났는데
쌍태래요

모두가 기다렸던 소식이라
함께 박수하며 기뻐해 주었지요

모임이 마쳐질 즈음
"이봐 맏상주 빨리 가야 될 사람도 있으니
마침기도 하고 놀자"
내가 마침기도후
"큰 누나 이제 교회 같이 가자"
얘기하니 모두가 그래요
인자 가야 해요
모두의 아우성에 못 이긴듯

"그래? 한번 생각해 보자"
여지를 주었습니다

큰 누나 생각이 바뀌는데
1976년 그 추워진 늦가을에서
50년이 걸렸습니다

올해가 아버지 가신지,
큰 누나가 교회를 떠난지
50년 희년 입니다

우리 가족에게도 주님이 예정해 두신
희년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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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권현희2026.04.05 18:42
희년은 왔습니다 우리들의 눈으로 보지 못해서 그렇지요...
하나님과 교회는 잘 못 이 없습니다 사람이 생각이 부족하고 모자라서 그렇지요 교회는 그래서 세상과 달라야 하고 달라 져야 하지요 오랜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믿음의 (나르시스)가 될 우려가 있어요 우린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되겠지요
나도 틀릴 수 있다 ~~ 이러한 마음의 기본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나는 나를 다시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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